자연을 능가하는 교육?
자연을 능가하는 교육?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05.23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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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수/민들레 공동체 대표
최근 한국 직업 능력 개발원이 지난 10년간 중·고학생들을 대상으로 분석한 ‘중·고등학생의 적성 및 학습시간 변화’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 학생들의 창의력과 언어능력, 대인관계능력과 자기성찰능력이 떨어졌다고 밝혔다. 우리 교육이 겉으로는 다양한 소질과 적성, 전인성, 창의적 인재교육과 같은 교육의 핵심 과제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성적만 강조하고 이를 위한 학원 공부가 늘면서 학생들의 수리·논리력을 제외한 모든 항목에서 하락했다.

대학 진학이 교육의 승패를 가르는 기준이라고 믿는 한 이러한 비교육적 행상은 쉽게 개선될 것 같다고 보지 않는다. 대학조차 변변력을 잃어가고 있고 나은 대학을 나왔다 손 치더라도 끊임없이 공부하고 평생학습하지 아니하면 않된다는 중압감에 내몰리고 있다. 이토록 공부를 많이하고 학습을 많이 하는 분위기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왜 행복하지 못하고 대인관계도 갈수록 어려워지고 자기 성찰의 능력이 떨어지고 더군다나 창의성이 약화되는가.

필자는 자연을 능가하는 교육이 어디있겠는가 질문하고 싶다. 그간 인류의 지속적인 관심은 자연을 능가하는 지식과 과학을 통해 부와 행복을 추구해왔고 이 과정을 소위 문명의 과정으로 믿어왔다. 그리고 수와 문자중심의 공부에 집중함으로써 점점 자연의 소중함 자연이 지닌 학습의 위대성을 망각하고 있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연을 해석하고 변형하고 재 창조해왔지만 오래전부터 현자들은 인간조차 자연의 일부라는 가르침을 해왔었고 이제 평범한 사람조차 자연을 능가하려면 인간의 기술과학의 노력이 힘겹고 불가능하다는 증거를 받아드리고 있다.

우리가 가벼운 마음으로 숲길을 걸을 때 무엇을 느끼는가. 아카시아 향에 이어 때죽나무 꽃 향내가 느껴지고 연이어 찔레향이 그리고 어느새 칡꽃 향이 났다가 마침내 인동초 향이 시골마을 길을 은은하게 채울 때 우리는 자연에 대해 무엇을 깨닳는가. 자연은 창조된 이래로 탁월한 자기보존능력으로 지속성을 유지했었고 자연은 한 그루 나무라할찌라도 변화무쌍한 아름다움을 포기한 적이 없었고 자연은 또한 또다른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조화로움을 잃어본 적이 없었다.

지금 한 개인과 전체 인류가 직면한 최대의 이슈는 지속가능성이다. 과연 우리의 삶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가 큰 화두이다. 에너지 고괄, 탐욕적 경제로 인한 균형상실, 편리와 인간 중심주의로 인한 지구환경, 기후 변화의 도전 심지어 과학영농과 혁신적 생산성향상에도 불구하고 악화되는 생물종다양성의 파괴와 농업의 약화는 더 이상 번영과 발전을 논하기 보다 지속 가능성으로 의문이 넘어가고 있다. 자연은 단 한번도 자기보존능력을 약화시키지 않았고 어느 산이든 사람의 도움없이도 수천년 울창한 식생을 지속시켜왔다. 살아남는 능력에 있어서 자연을 능가할 수 있겠는가.

교육의 중요한 강조는 개성과 특성을 발굴하여 탁월함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한 인간이 지닌 존재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성장케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날아가는 작은 새 한 마리라도 그 탁월한 색조와 음색과 동작과 본성에 맞는 성장과 아름다움을 지니지 않는 것이 어디있는가. 자연은 아침도 가슴벅차고 낮에도 열정으로 가득차고 저녘에도 황홀하다. 교육이 변화의 아름다움을 엮어내는거라면 자연을 능가할 수 있겠는가.

더불어 살아감은 자연의 지혜이다. 교육의 궁극성은 우리가 과연 함께 살아갈 수있는가의 도전이다. 자기 성찰능력이 인간에게만 있다고 착각하면 오만이다. 별과 달들은 그들만의 언어로, 동물과 식물은 그들만의 의사소통방법으로 온전히 자신을 지켜왔고 수천 수만년을 더불어 살아왔다. 자연은 기가막힌 지혜와 인내로 공생공빈의 덕을 유지했고 우리를 키워왔다. 누가 더불어 살아감에 있어 자연을 능가할 수 있겠는가. 교육은 결코 자연을 능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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