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있는 우리 문화유산과 정신
과학이 있는 우리 문화유산과 정신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05.24 19: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종호/한국과학기술원
초빙 과학자
특히 이포석정은 중국과 일본과는 달리 술잔이 사람 앞에서 맴돌도록 설계되어 잔이 흘러가다가 어느 자리에서 맴돌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유체역학적으로 와류(渦流:회돌이)현상이 생기도록 설계하였기 때문이다. 이 회돌이도 구조가 다르게 만든 것은 신라의 선조들이 유체이동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갖고 있었음을 뜻한다. 현대 과학으로도 공학적인 면에서는 가능한 한 발생되지 않도록 하는 회돌이 현상을 오히려 역으로 자유롭게 나타나도록 설계하였다는 점은 포석정에 대해 아무리 과찬하여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매년 봄이 되면 고가의 산삼을 캤다는 기사가 언론을 장식한다. 수백만 원에서부터 심지어는 수억 원을 호가하는 산삼은 고사리과 식물과 같이 은생식물(隱生植物)로 보통 백년 이상 된 것을 산삼이라고 칭한다. 산삼이 특별한 대우를 받는 이유는 산삼도 보통 작물과 마찬가지로 초본식물이지만 수백 년을 살 수 있어서이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산삼은 1981년 백두산에서 발견된 것으로 500년가량 되었다고 추정하며 북경의 인민대회당에 전시되어 있다.

산삼이 오래 살 수 있는 이유는 수백 년을 사는 동안 환경이 좋지 않으면 잠을 자면서 환경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이다. 잎이나 줄기가 없이 뿌리만 땅속에서 수 백 년 동안 썩지 않고 생존할 수 있다는 뜻인데 그것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땅으로부터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다는 뜻이다. 산삼의 특성은 재배적지에 대한 선택이 강하여 기후나 토질 등 자연 환경이 적당하지 않은 곳에서는 산삼을 재배하는 일이 아주 어렵다. 재배 인삼의 경우도 생산지에 따라 인삼의 형태, 품질, 약효 등에 현저한 차이가 있는 것을 보면 유독 몇 백 년을 생존할 수 있는 한국 산삼이야말로 특이한 성질을 갖고 있는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정보부족이지만 우리의 신화나 전설 또는 문학작품에도 과학성이 깃든, 시대를 앞서가는 상상력이나 과학적 관찰력을 엿보이는 내용이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이 미래에 대한 식견이나 과학적 사고 없이 바보와 같이 살았다고 단정하는 것은 사실과 매우 다르다. 가장 간단한 예로 ‘흥부전’을 보자. 흥부의 집에 둥지를 튼 제비 새끼를 잡아먹으려는 구렁이에 의해 제비 새끼가 다리를 다치자 흥부가 제비의 다리를 고쳐준다. 흥부에 의해 치료가 된 제비는 강남으로 가서 다음해에 박씨를 물고 오고 흥부는 졸지에 부자가 된다. 이 소식을 듣고 샘이 난 놀부가 자기 집에 살고 있는 제비의 다리를 고의적으로 부러뜨리면서 자신에게도 박씨를 갖고 올 것을 기대한다. 결론은 놀부가 파산하고 벌을 받는다는 구태의연한 권선징악의 대표적인 한국 소설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흥부전’의 작가는 매우 놀라운 과학적 지식을 갖고 소설의 플로트를 구성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놀부가 제비의 다리를 고의적으로 부러뜨렸는데도 다음 해에 자기 집에 온다고 생각하는 것은 제비가 다음해에도 똑같은 장소로 되돌아온다는 귀소성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제비는 인간과 매우 친하여 자신이 태어난 집에 사람이 살지 않으면 그 집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제비가 박씨를 물고 온다는 것이다. 제비가 박씨를 물고 온다는 것은 정확한 관찰력의 소산이다. 춘삼월에 찾아오는 제비들은 처마 밑에 집을 짓고 나서 반드시 조개껍질 두세 쪽을 물어다가 집에 놓아둔다. 이는 어린 새끼들을 뱀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다.

옛날 사람들이 업구렁이라 하여 보호하던 능구렁이는 우리가 전봇대에 손톱을 긁을 때 몸서리치는 것처럼 조개껍질과는 상극이다. 이를 잘 아는 제비가 먼 바다로 가서 조개껍질을 물어오는데 바로 그러한 상황을 관찰한 작가가 하얀색의 조개껍질 대신에 하얀 박씨를 물고 온다고 변환시킨 것이다. 더욱이 과거에는 거의 모든 초가집 지붕에 박을 심었으므로 박씨에 의해 열리는 커다란 박을 행복과 불행을 가져오는 소도구로 삼았다는데 찬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