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복근무
잠복근무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05.29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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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화/진주경찰서 경관
얼마 전 관내 아파트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 사건이 연이어 일어났다. 다세대 주택이나 아파트에서 불이 나면 일반 주택가 화재와는 달리 피해 규모가 엄청나다. 그래서 방화는 일반 범죄보다 대형 범죄에 속한다. 범인은 아파트 복도에 모아둔 폐종이나 골판지에 불을 붙여 놓고 도망간다. 경비원들은 가연물을 방치하지 못하도록 방송하고 유인물까지 배포해 보지만 그래도 범인은 감시의 눈길을 피하여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방화한다. 급기야 방화범을 검거하기 위하여 잠복근무에 들어간다.

잠복근무는 범인을 색출해 내거나 막아내기 위하여 어떤 장소에 몰래 숨어 지키는 일이다. 잠복근무는 열악한 근무환경에다 부족한 활동비 때문에 일선 형사들도 많이 기피한다. 범인을 잡기 위해서는 몇 일간씩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고충을 겪기도 한다. 가정과 사생활을 포기하다시피 일하는 일선형사의 노고를 알아주는 이도 없다. 수사역량을 높이기 위하여 도입된 수사 지원자가 턱없이 부족하고 모자란다. 범죄가 지능적 광역화 되는가에 비하면 근무여건은 위험에 많이 노출되어 있으므로 수사경찰직은 고단한 직업인 셈이다. 그래도 사명감이 없으면 하지 못하는 게 경찰관이다.

15층 복도식 계단을 4시간가량 오르락내리락 수십 번 반복하다 보니 배고픔과 피로가 밀려온다. 다리까지 아프다. 그렇다고 잠복근무 장소를 벗어나 허기를 채울 수 없고, 근처 중국집에 114 안내를 받아 “여기 00아파트 놀이터입니다. 냉면 두 그릇 배달됩니까” 라고 하니 “아저씨 지금 장난 합니까” 하면서 전화를 끊는다. 난감하다. 아마 놀이터로 배달을 해 달라는 주문 전화에 장난인줄 안다. 재차 사정을 하여 놀이터로 배달주문을 하였다. 상큼한 식초와 겨자를 넣어 비벼 먹을 생각만으로도 벌써부터 입맛에 신물이 돌기 시작한다. 앉아먹을 자리를 찾던 중 냉면이 도착하였다. “가짜 주문인줄 알고 왔더니 진짜네요” 하면서 이리저리 살펴보고 수상한 사람이라 생각이 들었는지 “뭐하는 사람들 입니까”라고 묻는다. 우린 그냥 얼굴만 쳐다보고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웃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또다시 감시의 눈을 떼지 못한 채 그렇게 냉면 한 그릇을 먹는 둥 마는 둥 식사를 끝낸다.

강력반 근무시절 식사는 물론이고 씻지도 못한 수많은 시간들, 며칠간의 잠복근무는 기본으로 길들여진 터라 고단함도 이제는 숙달이 되어 있다. 고생 끝에 범인을 검거 했을 때 그 보람과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최첨단 과학수사 앞에 범인은 반드시 잡히고 만다. 방화는 사회적 죄악이며 대행참사를 부르는 범죄행위이다. 문 앞에 내놓은 종이박스가 방화의 표적이 되고 있는 현실이 마냥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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