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은회
사은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06.07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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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길/시인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도 사십 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다들 중년의 나이가 되어버린 우리, 훌쩍 키가 커버린 나이다. 이 나이쯤이면 동창회나 기타 지역 모임을 통해서 하나 둘 잊혀진 동창들이 얼굴을 내밀고 골동품처럼 삭은 추억들이 만남의 화제로 좌석을 왁자지껄하게 만든다.

많은 친구들이 모습을 나타냈지만 한 친구의 소식을 알 수가 없었다. H라는 친구, 초등학교 6학년 때 한 반이었다. 그는 그림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다. 만화를 너무 잘 그려 화가가 되어있지 않은까 생각했다. 칠판에 달리는 말을 그리는데 진짜 말이 달리는 것처럼 착각할 정도로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실력이었다.
그는 다른 학교에서 전학을 왔다. 가까이 경전선 철도 공사가 한창이었던 때 철도 일을 하시는 아버지를 따라 우리와의 인연이 연결된 것이다.

지역적으로 모임을 갖고 있던 우리, 그 친구를 찾아보자 하는 제의와 함께, 수소문으로 그는 P라는 도시에서 공직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가깝고도 먼 거리, 물리적으로 먼 시간이었다. 다들 자기 앞만 보고 달려오다보니 옆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우리, 강물처럼 흘러간 그 어린 날을 찾아 가는 것이란 또 다른 소풍같이 마음이 설레는 일이었다.

그는 시의 국장직에 있었다.우리가 상상하였던 화가라는 분야와는 먼 거리였다. 그 친구와의 만남은 즐거움이었다. 오랫동안 잊혀져 있던 추억으로의 여행이었다.

그 친구와의 해후가 있은 지 얼마 뒤, 우리는 초등학교 6학년 담임 선생이었던 P선생님을 한번 찾아뵙기로 하였다. 전설같은 선생님, 호랑이 선생님 많은 별명과 함께 그 선생님과의 추억은 너무 많다. 벌 서고 맞은 기억을 유난히 강조한 친구들, 스파르타식 교육을 체험한 우리, 미움이라는 단어와 함께 애정이라는 체험을 함께한 그 때, 6학년 세 개 반으로 되어 있었는데 우리 반은 3반 방과가 끝난 후 숙직실에서 중학교 진학을 희망하던 그룹의 스파르타식 교육이 계속되었다. 당시 내가 감기가 걸린 적이 있었는데 선생님의 부인이신 사모님이 꿀물을 끓여 주시던 기억이 가슴 귀퉁이에 감동으로 아직 남아있다.

일식집에서 은사님 부부를 모시고 40여년만의 해후가 이루어졌다. 서울에서 달려온 친구, 부산에서, 울산에서 많은 친구들이 왔다. 6학년 3반 그 선생님 밑에서 배운 우리들, 스파르타식 교육으로 세 반 중에 도시학교로 많이 진출하는 성적표를 남긴 3반생님이 빚은 도자기, 우리들은 즐문토기, 민무늬토기,햇살무늬토기가 되어 까르르 맛나게 그 날 꽃처럼 웃었다. 이게 우리 살아가는 모습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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