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로동혈(偕老同穴)
해로동혈(偕老同穴)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07.03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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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식/진주 상봉동동 문화위원

결혼 적령기에 만나 연을 맺어 평생 반려자로 시집을 왔다. 같이 살면서“다음 생이 있다면 그 때도 둘이 함께 살자고 했지”라고 했다. 부부(夫婦)는 “남편은 온유(溫柔)하면서 의리(義理)로서 아내를 거느리고 아내는 유순(柔順)하면서 정당한 도리(道理)로서 남편을 받들며 부부사이에 예의(禮儀)와 공경(恭敬)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한다. 그런 연후에야 집안이 잘 다스려 질 것이다.”흐르는 세월은 막을 수 없고 인생이 황혼으로 가는 길을 누가 차단하랴 앞질러 가는 세월을 원망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가는 세월 앞에 이길 장수 없다. 1990년대 초 일본에서 아흔살 노인과 치매를 앓던 아내와 여행 끝에 실종됐다. 노부부의 아들은 몇 달 동안 두 노인의 행적을 쫓아 신용카드 기록을 추적해보니 여행길은 옛 신혼여행지에서 시작했다. 부부가 올랐던 산을 거쳐 자주 갔던 온천에서 끝이 났다.

그곳 바닷가에서 부부의 옷이 발견돼 남편의 외투 주머니엔 동전 몇 닢만 남아 있었고 부부가 은행잔고를 다 쓴 뒤 함께 바다로 들어간 마지막 추억 여행이였다. 프랑스 정치철학자 앙드레 고르가 아내 도린이 20여 년 전부터 불치병으로 심한 고통을 겪자 모든 활동을 접고 시골로 내려가 아내를 보살폈다. 부부는 이듬해 함께 목숨을 끊어 쉰여덟 해 결혼때 편지 글 그대로 마감했다. 그리고 그리스 신화에서 필레몬과 바우키스 부부는 한날 한시 죽게 해달라고 제우스 신에게 빌어 소원을 이룬다. 동양에서는 중국의 고전에 해로동혈이라는 사랑의 맹세가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중국 춘추시대 요임금이 순임금을 사위로 삼아 아황과 여영 두 딸을 순임금에게 시집보내고 왕위도 물려주었다. 아들이 있긴 하였으나 중요한 위치에 앉을 재목이 되지 않았다. 순임금은 나중에 멀리 호남성 쪽으로 수렵을 나갔다가 환도하지 못하고 호남성의 창오에서 죽으니 구의산에 장사 지냈다. 아황과 여영 두 왕후는 비보를 듣고 부군에게 달려가다가 슬픔과 사무치는 그리움을 못이긴 나머지 상강(湘江)이라는 곳에서 투신 자결하였다. 지금도 그곳에는 두 왕후의 순애를 기리는 사당(祠堂)이 서고 그들은 이 세상 지어미의 정절을 지켜주는 여신 상군(湘君)이 되어 후일에 유명한 설화(舌話)로 내려오고 있다. 부부의 이상은 같은 날 죽는 것이다. 사랑이 깊어 죽음까지 공유할 만큼 완전한 사랑이 있을까 부부로 산다는 것은 서로에게 스며드는 것이다. 내력도 성격도 다른 남녀가 고락을 함께하며 아주 조금씩 닮아간다. 생각하는 것 좋아하는 것 말투 얼굴까지 비슷해진다. 결혼은 인생을 함께 걷는 일이다. 아내를 수발하는 것은 60년 동안 받은 뒷바라지의 빚을 갚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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