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道家)의 현대적 의미
도가(道家)의 현대적 의미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6.30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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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웅/한국국제대학교 석좌교수

지리산 막걸리 학교 교장

무위자연(無爲自然)의 관념에서 시작된 도가(Taoist)는, 인생(人生)을 유가(儒家)처럼 인위(人爲)중심의 과욕(過慾)과 우월(優越)의식으로 일관된 적극적 삶의 영속이 아닌, 무(無)와 무욕(無慾)으로부터 전개되는 다시 말하면, 자연의 순리(順理)대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인간 본연의 소극적 유약성(柔弱性)의 형상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청(淸) ㆍ 허(虛)ㆍ 비(卑) ㆍ 약(弱) ㆍ박(朴) ㆍ졸(拙) 등의 자연적 관념으로 살아가다보면, 종국(終局)에는 소위 신선지경(神仙之境)의 바탕이 되는 무아주의ㆍ 금욕주의ㆍ 무위주의ㆍ 자연주의를 실천하게 되는 진정한 행복을 성취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더욱이 도가를 창시한 노자(老子)는 우선 우주 만물을 형성하고 있는 핵심적인 요소로 '도(道)'를 설정했는데, 이 도(道)는 그가 말했듯이 쉽게 어떤 논리나 언어로도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老子1章,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그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기도 애매모호한 것이다. 또한 도는 시각적으로 영원한 상무(常無)요, 공간적으로는 무변(無邊)의 크기를 지니고 있지만(老子1章, 無名, 天地之始 ),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형체요, 물질로도 그 존재를 인지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老子21章, 道之爲物, 惟恍惟惚, 惚乎恍乎, 其中有象, 恍兮惚兮, 其中有物. ) 그러나 천지보다 먼저 존재하여 독립된 행로를 운행하는 무궁한 생명으로 천하의 어미 노릇을 한다고 했으니(老子25章, 先天地生, 寂兮寥兮, 獨立而不改, 周行而不殆, 可以爲天下母. ) 그것의 본체는 바로 ‘무(無)’라고 보는 것이다.
 하여, 도가가 주장하고 있는 인생관을 종합해보면, 개인에 대해서는 담박(淡泊)과 소박(素朴)한 태도를 지키면서, 결코 남에게 교만하거나 다투지 않음으로 자기 몸을 잘 지켜 나아가는 것을 계율로 삼으면서, 한편 국가나 사회에 전혀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를 위해 무엇인가를 이루어 놓고도 그것을 사유(私有)하지 않고, 또 크나큰 공(功)을 달성시켰어도 결코 그것을 자랑하지도 않고, 동시에 무엇인가 풍성히 번창한다 해도 스스로 그것에 전혀 손을 대지 않으려는 이른 바 현덕(玄德)을 실천하는 인생이 가장 바람직한 삶으로 보고있다(老子10章,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 )
 동시에, 이들의 정치관은 상기의 본체론, 우주론 그리고 인생론 등에서 일관되었듯이, 무위(無爲)의 다스림 즉 무치(無治)를 주장했으니, 모든 인위적인 것은 오히려 극도의 혼란과 죄악을 초래하는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른 바 성현(聖賢)의 통치를 버리고, 인간적인 지혜까지 감출 때 오히려 만백성에게 진정한 태평성대(太平聖代)가 도래하니(老子19章, 絶聖棄智, 民利百倍. ), 혹은 백성을 크게 총명하게 만들지 말고, 차라리 백성들을 우둔하게 만드는 사람이 뛰어난 정치가라고까지 강조하는 역설적인 정론(政論)을 펴기도 했다.(老子65章, 古之善爲道者, 非以明民, 將以愚之. )
 한편, 공자는 대동(大同)천하를, 플라톤은 공화국(共和國)을 이상적인 세상으로 주장했지만, 노자는 정반대로 작은 부락국가에 매우 적은 인구를 가진 소위 소국과민(小國寡民)을 진정한 이상국가로 추구했으니, 그곳에서 조용히 살면서, 또 서로의 왕래도 거의 없고, 전쟁도, 문화도, 소통도 일체 없는 소위 자연적 무정부상태를 지고(至高)의 유토피아로 지향했다는 것이 주목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상기와 같은 도가(道家)사상을 오늘날 실용(實用)과 편익(便益)중심의 현대적 생활 철학과 관련하여 기술해본다면, 도가 사상은 비록 지금의 우리에게는 절대적이고 필연적 요소인 소위 생산활동(生産活動)을 저하시키고, 정부의 존재의식조차 약화시키고, 과학의 부재(不在)까지 초래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인간들 간의 태고로부터 면면히 이어온 끊임없는 분쟁을 완화시키고, 또한 오늘날 우리들 인간에게 시시각각 닥치는 극도의 절망감을 체념(諦念)으로 전환시키고, 심지어 인간 본연의 고유한 감정인 분노조차 급속히 냉각시킴으로써, 그 결과 우리 모두에게 안신입명(安身立命)의 길을 터놓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이들의 주장이 수억 년 인간이 지켜온 기본적이고 전통적인 그들 고유의 생활 터전인 인연(人煙 : 인간의 기본적인 삶의 모습)까지 포기하라는 것은 결코 아니고, 모든 인류가 여전히 끝 모르게 증폭되고 있는 무한한 욕망의 구렁텅이와 철저히 물화(物化)되어 버린 소위 반기계적(反機械的) 인간 위기에 대한 철저한 반발(反撥)의 사조(思潮)임에는 틀림없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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