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인 생각이 필요한 사회
적극적인 생각이 필요한 사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07.24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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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택/진주문화원 부원장

우리사회는 “시원찮은 사람일수록 개성과 자존심이 세다” 이런 걸 보르델은 “열등감을 뒤집어 놓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하찮은 일에도 ‘자존심’ 운운하고, 들고 나오길 잘하는 사람이 많다. 위신상 그럴 수가 없다느니, 자존심이 상해서라느니 하고 점잔을 빼는 친구들은 거의가 체면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다. 이건 또 그만큼 자신이 없다는 증거이고 보니 이들은 무슨 일에고 과감하지 못하다.

일을 해서 잘되지 않으면 체면 손상이 될 테니 아예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위신상 어떠니 하면서 아주 도도한 자세로 불러대기만 하지 선뜻 앞에 나서질 못한다. 이런 사람일수록 허세가 세다. 아니 세야한다. 시원찮은 선비 갓이 높고 헛기침이 큰 법이라 했다. 초연한 척하고 뒤로 물러서서 남의 싸움 구경이나 했지 팔 걷고 들어가질 못한다. 그리고 안한다.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이 시조의 뜻은 얼마나 깨끗한 정신이냐 하지만 이것 때문에 망국의 설움까지 겪어야 했다면 과언일까? 조정의 정치가 잘 못 되어 가면 정객은 봇짐을 싸들고 낙향해 버렸다. 더러운 무리들과 싸우기엔 위신이 서지 않는다는 핑계였다.
나라생각은 뒷전이고, 개인의 체면만 앞세워 달아나 버렸다. 그 뿐인가. 외국의 문호개방 요구를 마치 오랑캐 무리의 생떼를 보고 아예 나라 문을 닫아 버렸다. 이런 걸 모두 백로정신으로 숭상하기엔 우리 너무 소극적이었다. 까마귀 싸우는 곳에도 가봐야 할 게 아닌가? 말려야 될 일이면 말려야 하고, 한쪽이 나쁘면 한판 해야 할 게 아니냐 말이다. 더럽다고 외면해 버린다는 건 허세요. 무력(無力)감 탓이지. 그게 결코 위신을 지키는 길은 아닐 것이다. 현실 도피요. 허황된 체면의 노예일 뿐이다. 한마디로 싸울 자신이 없어서였다. 자신 없는 싸움을 하라는 건 아니다. 그럴 땐 물러나 다음을 위한 준비라도 갖춰야 하는데 그러지도 못했다. 아예 피해버리고 모든 걸 잊고 돌아왔다. 이런 소극성, 기피증도 지나친 체면의식의 산물이다. 일상생활의 작은 일에도 경쟁을 기피한다. 지면 체면 손상이 되기 때문이다. 자리는 탐나는데 선거에 출마 못하는 소극성도 체면 때문이다. 투표에 지면 체면손상이 말이 아니다. 그러다가도 일단 출마를 결심하면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빚을 지고라도 이겨야 한다. 과열이 잘되는 선거 풍토도 따지고 보면 이 체면 의식이 낳은 현상이다. 정치 이념은 뒷전이고 떨어지면 창피하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당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선거풍토에선 페어플레이란 상상도 할 수 없다. 인신공격은 물론 감정싸움 차원으로까지 발전한다. 입후보자는 물론이고 선거 참모 가족까지 아주 원수가 된다. 이 이야기는 지방일수록 더욱 심각하다. 지고도 승복은 않는다. 선거 소송이 우리처럼 많은 나라도 없을 것이다. 당선자에게 축하 화환을 보내고 최선을 다한 상대에게 격려를 보내는 외국의 풍경이 부럽기만 하다.
패배를 깨끗이 자인해야 한다. 승패를 수용해야 한다. 내 상식으로 선거법을 위반 하지 않은 선거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깨끗이 승복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을 노릴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 체면을 지키는 일이다. 한판 승부에 인격까지 들먹이고 거창하게 떠든다면 이건 자존심이 아니라 열등의식의 소산이다. 작은 일에도 지길 두려워하는 사람은 패배가 곧 잠자고 있는 열등의식을 자극할까 두려워서다. 자신 있는 사람은 지는 걸 두려워 않는다. 졌다는 단순한 사실을 두고 자존심 운운하고 떠들지도 않는다. 지면 진거다. 그 뿐이다. 그렇다고 아주 진 것도 아니요. 인생에 진 건 더욱 아니다. 오늘 한 번 졌을 뿐이다. 다른 복잡한 의미를 붙일 필요가 없다. 곧 2012년 런던 올림픽이 열릴 것이다. 미국은 올림픽에 관심이 없다. 실황중계는 저녁 뉴스 시간대에 소개하는 정도이다. 그들은 국내 야구 시합에 관심이 쏠려있다. 금메달 하나에 국운이라도 걸린 듯 초초해 하는 우리들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메달 하나에 온 국민이 축제 무드에 젖어 흥분한다. 체력이 국력이란 말도 작은 나라에서나 하는 소리다. 지면 진 거지 거기에 나라를 들먹일 것 까진 없다. 올림픽에 졌다고 나라가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한번은 지게 마련이다. 지금은 경쟁사회다. 떳떳이 나가 떳떳하게 싸우는 거다. 당당한 패배가 비굴한 승리보다 얼마나 더 명예로운가 역사가 웅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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