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와 생명의 숲, 축령산 편백나무 숲길 트레킹
치유와 생명의 숲, 축령산 편백나무 숲길 트레킹
  • 최창민 기자
  • 승인 2011.06.30 2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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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축령산, 그리고 편백나무숲

▲ 편백나무 숲길을 걷는 산우들

장마와 태풍의 계절 여름은 궂은 날씨로 인해 산을 찾는 사람들을 성가시게 할 뿐 아니라 산행에 많은 애로를 주기도 한다.

기능성 아웃도어나 고기능의 등산화를 갖췄다 해도 산행 시간이 길어지면 비와 땀이 범벅이 돼 축축하고 눅눅해지는 기분을 쉽게 떨칠 수가 없다. 그래서 비 오는 날의 등산이란 누구나 꺼릴 수밖에 없다.
지난 주, 6월 기상으로는 이례적으로 태풍 메아리가 한반도를 덮쳤다. 일찌감치 시작된 장마까지 겹쳐 궂은 날씨는 연일 계속됐다.
이런 현상이 지구온난화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몰라도 지난 겨울 혹독했던 추위를 생각해보면 한반도의 기상이 예년 같지 않다는 분석은 가능하다.
며칠 전 우리나라에서는 그것도 내륙에서는 거의 발견된 적이 없다고 하는 희귀새 군함조의 출현했다. 이것이 지구온난화와 어떤 관계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이른 아침부터 아니, 전날 저녁부터 매스컴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기상예보는 마치 “아예 꼼짝 말고 집에 박혀 있으라”는 얘기로 들렸다.
실제 계획된 산행지가 전남 장성의 입암산이고 보니 서해안 쪽으로 상륙한다는 태풍의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고, 거기에다 300mm가 넘는 폭우 역시 위세가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른 아침부터 비는 주룩주룩 내렸다. 결국 예정했던 입암산을 포기하고 인근의 ‘축령산과 편백나무숲’을 가로 지르는 트레킹으로 코스로 변경했다.

▲ 안개에 젖은 할엽수림
▲축령산(620m)은 장성군 서삼면과 북일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편백나무숲이 자랑거리다. 그리 높지 않으나 산을 휘감고 있는 편백림이 전국의 산꾼들과 산행객을 불러 모은다.
편백림에서 배출되는 휘튼치드는 아토피 피부나 항암작용에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삼림욕이나 환자들의 치유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지난해에만도 10만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경기도에 있는 축령산과는 다른 산이며 옛 이름은 취령산, 문수산이라고도 불렀다.
명물 편백나무숲은 춘원 임종국(1915~1987)선생이 1956년부터 1977년까지 21년간 사재를 털어가며 숲을 가꾼 것이다. 축령산 남서쪽 산록에 숲이 조성되어 있으며, 면적은 약 3㎢에 이른다.
이 숲은 2000년 정부의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보전해야 할 숲’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고 숲을 가로지르며 조성된 약 6km의 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등산로를 겸한 트레킹 코스는 다양해 현지에서 여건에 맞게 정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 진주 밀레 산악회
▲진주지역의 밀레 산악회 회원들과 함께한 산행은 ‘건강숲길’이라는 이름지어진 코스, 추암마을 주차장을 출발해 임종국선생기념비→축령산 정상→금곡마을 주차장(우물)→편백숲 데크로 돌아 나오는 비교적 짧은 코스였다.
이 산에는 ‘솔내음숲길’ ‘산소숲길’ ‘하늘숲길’이라는 이름의 둘레길 코스가  있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숲길은 추암 대덕 모암 금곡 4개마을을 연결하는 편백숲길이다. 장성군에서는 앞으로 하루코스 19km, 반일코스 11km 등 총 6개 코스를 개발할 계획이다.

▲매스컴의 호들갑에도 불구하고 산 들머리에 서자 어찌된 일인지 거짓말 처럼 비가 그쳤다. 20여분 정도 임도를 따라 오르면 임종국 선생의 공적비가 나온다.
서두에 언급했듯이 임종국 선생은 이 숲을 조성한 인물. 1950년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 이곳에다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황폐화된 황무지, 버려진 땅에 21년간 나무를 심고 가꿔 지금의 생명의 숲을 있게 한 것이다.
온갖 어려움을 겪고 빚까지 얻어가며 나무를 심었던 그는 결국 세상을 떠나서도 숲의 일부가 됐다. 87년 임종 후 2005년 축령산의 한 느티나무 아래에 수목장으로 안장됐다. 산림청은 2002년 이 숲의 가치를 인정해 매입한 뒤 현재 국유림으로 관리하고 있다.
임종국 선생 기념비 앞에서 숲 관리인의 안내를 받은 산우들은 곧바로 축령산 방향으로 열려 있는 등산로로 방향을 잡았다.
비는 그쳤지만 가끔씩 날리는 비로 가파른 산행길의 미끄러움을 감수해야했다. 산허리쯤에서부터  편백·삼나무가 등장한다. 생각보다 나무둥치가 크지 않은 것은 초창기 심은 것이 아니고 훗날 계속된 조림사업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나무의 특성상 자로 잰 듯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오른 숲에는 아침 안개가 자욱해 신비감마저 자아낸다. 그 안개는 태풍의 뒷끝에서 부는 바람 때문에‘휘익∼ ’휩쓸려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고스락 부근에 닿으면 인공림의 흔적은 줄어들고 이 산 고유의 활엽관목지대가 나타난다. 전쟁의 폐허속에서 살아온 생명력 긴 나무들이다. 안개 속에서 펼쳐지는 나무들의 실루엣이 마치 신세계를 보는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정상에 2층짜리 휴식처인 팔각정이 버티고 있다. 갈림길 금곡방향 하산길을 따르면, 이때부터 제대로 자라 울창해진 50년생 편백나무숲이 펼쳐진다.
날씨가 좋으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돗자리를 하나씩 깔고 앉아 휘튼치드를 비롯한 숲의 기운을 마음껏 들이킬수도 있다.
숲길은 예쁘다. 누구든 마음을 열게하고 걷을 수 있게 한다. 휑하니 빠르게 걷게도 하고, 뒷짐을 진 채 세상 이야기를 나누며 걸을 수도 있다.
휘튼치드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하면 식물은 병원균에게 끊임없이 공격을 받게 되는데 터를 박은 나무는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을 병원균으로부터 방어하기위해 어떤 물질을 발산하게 된다. 이 것이 휘튼치드이며 이를 인간이 활용하는 것이 산림욕이다. 오래 전 고대 이집트에서는 시체를 썩지 않게 보관하기 위해 식물의 향료 즉 휘튼치드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금곡 주차장 부근에 있는 우물이 명물이다. 한여름엔 얼음처럼 차갑고 겨울엔 따뜻한 물이 흘러나온다. 수량이 많아 깨끗한 것이 특징,  숲의 관리인은 수질검사 결과 “음용가능한 물이다”고 일러 주었다. 편백이 뿜어내는 휘튼치드를 비롯한 치유의 물질들이 땅속에 스며들어 다시 지표로 흘러나오는 샘이라면 몸에도 좋지 않을리 있겠는가.
요즘 와서야 숲의 효능이 많이 알려졌지만 실상은 오래전부터 인간의 삶 속에는 숲과 물이 생명의 근원이었음을 깨달은 이가 많다.
우리 조상들은 일찍이 산림조성과 보호에 공을 들였다. 치악산 구룡사 입구에 있는 황장금표(黃腸禁標)가 이를 대변한다. 황장금표는 나무 속이 누런빛을 띠는 소나무인 황장목의 훼손을 막기 위해 황장산을 지정하고 경계지점에 이를 표시했다. 이 외에도 산림을 보호하기 위해 금산, 봉산(封山)제도를 실시했다.
미국의 사상가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젊은 시절 숲으로 들어가 통나무를 짓고 무소유의 삶을 살았다. 우리는 그의 ‘월든, 숲속의 생활’ 이라는 책에서 무소유와 숲의 효능에 대해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그래서일까. 축령산 숲길을 걸으면 욕심의 부질없음과 고마움 그리고 감사함이 저절로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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