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행인과 도둑의 보름달
술, 행인과 도둑의 보름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7.06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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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숙/시인
얼마 전 공감을 넘어 감동 치안을 구현하기 위한 주민간담회가 경찰서에서 있었다. 그 취지를 살리려는 뜻이니 ‘토론 및 건의시간’ 진행을 좀 맡아달라고 했다. 경찰서에서 서장님 이하 경찰 간부들과 직원들이 다 모이고 지역의 사회단체장들과 주민대표로 읍면동별로 각 두 명씩이 모인 자리라 선뜻 내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단 마이크를 쥐면 잘 가지고 노는 편이라 그날도 활발한 자유토론에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1.2부 합해서 두 시간이 넘어서자 마무리를 급히 맺느라 마음속에 아직도 돌덩이로 맺힌 응어리 하나가 풀어지지 않은 채 있다. “서장님, 낮에 농사일 하다가 농주 한 잔 한 것은 단속에서 좀 봐줬으면 합니다”
모 단체의 대표가 맨 마지막에 이 말을 꺼냈다. 그 순간 ‘아니, 어떻게 이런 말을 이런 자리에서 하는가. 술이 뭐라고. 육학년은 족히 넘은 사람이. 머리에 백발을 이고 자기보다 젊은 서장을 앞에 앉혀두고’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녹색어머니회장 입장을 대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낮에 고된 농사일 하다 술 마신 사람들이라고 봐주기 시작하면 회사원들 장사하는 사람들은, 만약 시장에 갔던 당신 아내나 학교 마치고 돌아오던 손자가 농사꾼이 농주 한 잔 한 차에 치여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었다면 당신은 그 운전자를 이해하고 용서해주겠는가. 또 댁의 아들딸이 음주운전으로 대형교통 사고를 내고 와서 “나 이것 아빠한테 다 배워서 그렇다”고 하면 어쩔 셈인가.
술을 마시고 핸들을 잡는 것은 미필적고의(未畢的故意)의 살인행위다. 게다가 이건 자기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따라하라고 몸소 가르치는 꼴이 아니던가.
막말로 만취운전하다 죽는 이야 죽을 짓을 해서 죽었다고 치자. 그러나 그 차에 당한 피해자는 무슨 날벼락인가. 그리고 그 사고를 수습해야 되는 가족들은 음주운전 해서 패가망신으로 최후를 맞은 이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이는 술잔이 차 열쇠를 유혹할 때마다 한번쯤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그러기에 보름달도 길을 가는 행인에게는 좋아도 도둑에게는 안 좋다고 했다. 시간 없는데 명심보감에 나오는 이런 이야기까지 한다고 눈 흘기셨던 몇 분들에게 다시 묻고 싶다. 술 취해서 농기계 다루다가 사망사고가 나면 누구 책임인가. 누가 손해인가. 그리고 경찰은 도둑 편에 서야하는가. 행인 편에 서야하는가.
음주 운전이나 안전벨트 착용이 왜 단속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건 일차적으로 자신의 안전과 생명에 직결된 문제이므로 단속 이전에 스스로가 알아서 할 문제다. 이런 걸 단속한다고 따르고 안 한다고 안 지킨다면 그 사람의 인격은 수준이하다.
정신병리적 현상 속에서 인간의 개성에 대한 강한 탐구가 나타난다고 생각하여 철학적 사고의 원천을 거기에서 찾았던 야스퍼스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연대감이 존재하기 때문에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잘못된 것은 공동의 책임이라고 봤다. 그러기에 악을 저지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그것에 대한 책임은 언제나 같이 나눠지게 된다고 했다.
최근 해병대원이 소총으로 목숨을 끊고, 민항기에 소총을 발사하더니 급기야는 4명이 사망하는 총기 난사사건까지 발생했다. 그런데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나면 그 주인공의 아우라에는 어떤 형태의 검은 그림자가 숨어 있을까가 너무 궁금하다.
대학등록금, 청소년 폭력, 무너지는 공교육 현장, 치솟는 전세, 눈만 뜨면 오르는 생필품 가격 등 무엇 하나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진흙탕 씨름판에다가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자들의 통곡까지 꼭 추가시켜야 하겠는가. 들리지 않는가. 여기저기서 울부짖는 서민들의 못 살겠다는 저 아우성이.
음주운전은 초기대응을 엄격히 해야 한다. 단속할 시기를 놓치면 국민적 고통과 국가의 장래까지도 어둡게 한다. 상습 음주운전으로 사망자를 냈다면 그는 사형감이다. 지금 우리 운전문화. 음주문화는 너무 엉망진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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