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수록 보이는 사람살이
나이 들수록 보이는 사람살이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10.07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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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택/진주문화원 부원장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나이라는 게 무엇일까? 형과 아우 사이에는 나이 이외는 차이가 없는데 어째서 사람 사이의 순서를 갈라놓은 것일까? 나이가 되었다고 돌잔치를 하고, 학교에 가고, 졸업을 하고 시집 또는 장가를 가는 것이 인생살이의 기준인가?

혼담이 오고 갈 때 노처녀, 노총각이니 하며 퇴짜를 놓는 것을 보면 나이라는 것이 인생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일까? 특히 정년퇴직은 나이 하나만을 기준으로 일어나는 일이니 대단히 강력한 것이 아닌가? 더구나 인생의 생로병사 가운데 그 끝맺음은 역시 나이 때문이므로 나이는 무서운 것이다.
흔히들 세월이 무섭다고 하나 그것은 바로 나이가 무섭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이 늙기 싫어하는 것은 누구나 갖고 있는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어릴 때 서로 나이가 위라느니 생일이 빠르다느니 하며 나이 많기 시합을 하던 친구들도 중년에 접어들면 슬그머니 입을 다물고 있다. 아니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기보다는 서로 나이가 많지 않다고 내심 우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50대가 되기 싫어서 누가 물으면 언제나 49살이라고 대답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노처녀의 나이는 결혼 상대가 나타날 때까지는 언제나 정지 상태인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은행이나 회사 공무원 사회에서 머리 염색하는 사람이 더욱 많아지고 성형외과나 미용실이 온갖 다양한 맵시로 고객을 행복하게 만들며 성업 중인 것을 보면 모두들 나이 붙잡아 매기에 나선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든다.
‘몇 살부터 노인이 되는가?’라고 20대 대학생에게 물어보면 남자는 60세, 여자는 55세부터 노인이 된다고 한다. 똑같은 질문을 60대 이상의 고령자에게 던져보면 대답은 판이하여 남자는 65세, 여자는 60세부터 노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젊은이 눈에는 55세만 넘은 여자는 모두 할머니로 보이지만 정작 당사자인 나이 많은 여성들은 60세가 넘지 않으면 할머니가 아니라고 한다. 즉 늙어갈수록 남자보다 여자가 나이를 실제보다 더 적고 젊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면 환갑이 아직 되지 않은 50대 후반 여성들은 노인이 아닌가? 아마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에 있는 중년남성도 머리가 희끗희끗 하고 피부의 탄력성이 줄어들고 실제 나이보다 노숙해 보이는 사람들은 집안 모임, 계모임, 동창모임, 버스정류장이나 길거리에서 할아버지 대우를 받은 적이 한 두번 이상은 있었을 것이다. 그 때 기분은 과연 어땠을까? 사람은 누구나 젊음을 가능한 한 오래 간직하고 늙음을 지연시키려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이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바램이다. 그래서 기왕이면 길거리나 차안에서 만나는 약간 나이든 사람을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니라 선생님 또는 아주머니라고 불러드리는 것이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는 호칭이 아닐까 한다.
요즘 평균 수명이 연장되고 장수가 많아져 80대 이상 노부모를 모시고 살아가는 자녀들이 더러 있다. 이 때 그 자녀들은 대부분 60대라 보통일 것이다. 따라서 이들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지 이미 오래며 손자들이 사회인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을 40대 인 것이다. 그러나 아직 연로하지만 노부모가 생존해 계시기 때문에 자신들은 아직도 노인이 아니라고 굳게 믿는 경향이 있다. 특히 머리가 반백이고 손자들을 거느린 50대 후반부터 60대의 며느리들의 생각은 특이하다. 즉 그들에게 자신을 노인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면 으레 80~90대의 시부모님은 노인이지만 자신들은 노인이 아니다. 다만 며느리 일 뿐이라고 무의식적으로 대답한다. 나이와는 관계없는 엉뚱한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라는 사회적 역할 중심으로 대답한다. 그 대답이 논리적으로는 맞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심리적으로는 매우 정확한 대답이라고 심리학자 윤진 교수는 말했다. 이 말의 자세한 의미를 들여다보면 연로한 시어머님이 늙어가는 며느리의 노화방지를 바람막이 병풍역할을 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시부모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한편으로는 머리가 맑아지고 어깨가 홀가분해질 수도 있다. 그 반면에 늙음의 강풍은 세차게 불 것이고 진짜 노인임을 부정 할 길이 없어진다. 죽음에 있어서 다음은 내 차례라는 무거운 감정이 가슴에 밀려 올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부모님은 늙어가는 아들, 딸, 며느리의 나이를 붙들어 메어놓은 세월의 방패막이이다. 우리 모두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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