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질의 조급증과 배짱
성질의 조급증과 배짱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10.21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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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택/진주문화원 부원장

우리의 삶에 조급증을 느낀다는 것은 무엇인가? 위험이 다가온다는 신호이다. 조급증은 보통 불안과 함께 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소한 일에도 핏대를 올리고 싸운다. 서양인의 여유 있는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같은 동양권의 중국 사람은 느긋한 대륙성 기질이고 섬나라 일본인은 친절과 웃음으로 자기를 보호한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가시를 세우고 있는 고슴도치 같다. 가만히만 있으면 순한 양 같다. 그러나 누가 건드리기만 하면 즉각 가시를 곤두세우고 신경질적이다. 이게 모두 잠시의 여유가 없는 조급함에 쫓기고 있는 심리적인 탓이다. 조급하면 불쾌지수가 높아지고 혈압이 상승한다. 같은 사실을 두고도 꼭 불쾌한 쪽으로 받아들인다.

좋게 보고 좋게 생각할 수 있는 것도 쫓기는 입장에선 그럴 여유가 없다. 공격적인 무드에 있으므로 심리상태도 방어적으로 가기 마련이다. 오해도 잘한다. 이런 사람 앞에서는 농담도 못한다. 좋아서 웃는 것도 왜 비웃느냐고 시비하는 게 조급한 사람의 방어적 심리이다.
도대체 분위기가 긴장 일색이다. 더운 날씨뿐만 아니라 옆집 개가 짖어도, 피아노를 쳐도, 앞 사람 담배연기까지 모두가 짜증스럽기만 하다. 세상 모든 게 불쾌하게만 보인다. 특히 요즘 세상살이 여론 중 대통령 출마예정자의 지지도가 상승해도 마음속의 지지가 다른 경우 신경질적인 반응을 나타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집어치우라고 신경질적인 불쾌한 감정을 그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도 모두 그러한 방향으로 만들어 버린다. 작은 짜증이 심리적으로 증폭되어 분노를 넘어 격노한 반응으로까지 가기도 하고 하찮은 일로 사람을 다치게 하는 폭력으로 가기도 한다. 평생에 후회할 일도 서슴치 않는다. 사람의 감정이 폭발하면 이성을 잃게 되고 자제력도 잃게 된다. 이것이 다급함의 시작이요. 끝이다. 외국인들은 우리 민족을 다혈질 국민이라 부른다. 사실 우리만큼 신경질 잘 부리는 민족도 세계 어디에도 흔치 않다.
“나는 성질이 급해서...”라고 변명인지, 자랑인지도 모르는 소릴 가끔 듣는다. 이건 변명도 자랑도 될 수 없다. 다급함의 신경질이야말로 우리 국민의 대인관계를 아주 어렵게 하는 요인의 하나다.
관공서나 회사에서 신경질적인 상사를 모셔야 하는 직원은 눈치 보느라 다른 일을 못한다고 한다. 상사의 기압상태에 따라 사무실 분위기가 달라진다. 이런 사람은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족들도 모두 경계의 눈빛으로 그를 살핀다. 이렇듯 조급함의 성질은 본인 뿐 아니고 주위 사람까지 불안하게 한다. 백해무익의 신경질을 왜 그렇게 부려야 하는지,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면 후회되는 일도 많을 것이다. 안 내도 될 짜증을 부려 미안한 생각이 들 때도 있을 것이다.
서양인들은 어지간해서 화를 내지 않는다고 한다. 남의 차를 들이 받고도 기껏 한다는 게 입을 삐죽거리며 두 손만 펴 보인다. 미안하단 뜻인 모양이다. 피해자도 같은 제스쳐를 한다. 괜찮다는 뜻인지 어이없다는 건지 참 납득이 가지 않는 행동을 보인다. 당연히 핏대를 내면서 고성과 삿대질을 해야 할 판인데도 말이다.
일상생활에서 이처럼 여유 있는 그들도 명예손상이나 사상을 위해서는 분명히 일어선다. 목숨까지 건다. 아까운 사람들이 결투장에서 이슬로 사라진 경우가 가끔 있었다. “대위의 달”을 쓴 푸시킨도 화를 못 참아 죽어야 했다. 마누라를 따라 다니는 당테스에게 결투를 신청한 게 화를 자초한 것이다.
이것도 배짱인지 생각에 따라 다를 것이다. 칸트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그에게도 적이 많았다. 학문상의 반대파도 많았지만 현실에 적극적이어서 길에서 다투는 일도 흔히 있었다. 평생의 친구였던 그린도 길에서 우연히 싸우다 만났다. 미국 독립이 한창일 무렵 몇 사람이 길에서 그에 대한 찬부를 논하고 있었다. 여기에 끼어든 칸트가 미국편을 들자 화가 난 그린이 자기 조국 영국을 모독했다고 결투를 신청했다. 그러나 칸트는 칼을 뽑아 들지 않았다. 화도 내지 않고 차분히 그의 주장을 논리정연하게 펴 나갔다. 드디어 그린이 머리를 숙였다. 그들의 우정은 이렇게 시작 된 것이다. 조국의 명예에 목숨을 건 그린의 배짱도 보통이 아니지만 이를 거절한 칸트의 배짱은 더욱 일품이다. 군자(君子)는 대노(大怒)하는 것이라고 공자는 가르쳤다. 노할 때는 큰일을 보고 크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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