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감나무가 주는 교훈
단감나무가 주는 교훈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11.1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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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택/진주문화원 부원장

늦가을 서리가 내리는 농촌을 대표하는 과일이 감이다. 여름에 무성했던 잎 사이로 선홍색깔의 감이 주렁주렁 열린 단감나무가 푸른 하늘을 이고 서 있는 풍경을 보면 어디에서나 고향처럼 푸근함이 느껴진다. 옛날 농촌에는 집집마다 서너 그루씩의 감나무를 가꿨다. 멋있는 농촌 풍경 못지않게 감나무를 기르던 속뜻은 조상의 제사상에 올리고 귀한 손님이 오면 대접하기 위해서였다. 요즘은 건강관리와 여가선용 또는 취미생활로, 재미있게 일하면서 가용경제에도 도움을 받고자 감나무를 가꾸고 있다.

옛말에 “감나무 밑에 서 있기만 해도 건강하다”는 말이 있다. 감나무는 감뿐만 아니고 잎사귀 까지도 이로워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감나무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깊었던지 “감나무를 땔감으로 쓰면 7년을 빌어먹는다.”는 말도 전해 온다. 또한 조상들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아 온 감나무에는 7가지 덕이 있다. 즉 오래 살아 수명이 길고, 그늘을 만들어 시원하게 하고, 새가 집을 짓지 않아 깨끗하고, 벌레가 먹지 않으며, 가을 단풍이 아름답고, 열매가 먹음직스러우며, 낙엽은 좋은 거름된다.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다는 점을 꼽고 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도 감은 훌륭한 먹거리였다. 어릴 적 간식이었던 감꽃부터 시작하여 늦여름에는 땡감을 소금물에 우려낸 침시 감으로, 가을과 겨울에는 홍시로, 봄에는 제사용으로 곶감이나 감 장아찌나 감식초로 만들어 유일하게 사철 먹을 수 있었던 과일이었다. 이렇듯 감은 일 년 내내 당분, 비타민을 공급해주는 우리민족의 종합 영양제 역할을 해 왔다.
또한 감나무는 그 잎이 넓어서 옛 선비들은 이 초록 잎에다 붓글씨 연습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감은 문(文)을 상징한다. 목재가 단단해서 화살촉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는 무(武)를 상징한다. 겉과 속이 같으므로 충(忠)이고, 홍시(紅柿)는 이(齒) 없는 노인도 먹을 수 있으므로 효(孝)이다. 늦가을 서리를 이기고 오래토록 있으니 절(節)이 있다고 여겼다.
필자 부부는 25년 전 단감 묘목 250여 그루를 심어 조그마한 농장을 일구었다. 성과수가 될 때까지 매년 봄부터 초겨울까지 애지중지(愛之重之) 관리하여 수확을 보고 있다. 봄이 오면 벌들이 하얗게 핀 감꽃을 찾아 온종일 이 꽃 저 꽃으로 꿀 따기에 바쁘게 비행하며 꽃을 수정시킨다. 그리고 피고 난 감꽃이 지면 그 자리에 인고의 작은 열매들이 맺힌다. 이 건강한 열매들은 거름과 쏙음질, 제초작업, 병충해 방제로 점점 크게 자란다. 여름철의 장마와 수차례의 태풍, 뜨거운 태양열을 견디어 마침내 가을이 되면 푸르던 싱싱한 풋감이 점점 붉어지면서 탐스러운 단감이 된다. 그런데 가을이 되면 장마와 태풍, 강열한 태양열, 병충해를 잘 견디어 냈던 단감들이 살살 부는 가을바람에도 힘없이 툭툭 떨어지는 모습을 본다. 떨어진 감들은 그대로 땅에서 썩어버리고 만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너무 안타깝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병충해에 약한 놈은 상품이 되기 전에 저절로 떨어져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한 자연의 법칙이라는 것도 깨닫게 된다. 비단 단감뿐만 아니라 모든 과일은 이와 유사한 과정을 거친다. 그 동안 단단히 붙잡고 있었던 나뭇가지를 놓아버리고 땅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만일 그 동안 붙잡고 있었던 나뭇가지를 놓지 않고 매달려 있으면 결국 까치밥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때가되면 미련을 버리고 스스로 놓아야 하는 것이 인생의 순리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주위에서 일부 정치인이나 재벌가, 고위 공직자들이 자기 손에 쥔 것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권력, 명예, 돈, 지위. 이것들이 뭐 길래?
우리는 역사를 통해 한번 쥔 권력을 놓지 않으려다 결국 비참한 종말을 맞는 정치인이나 재벌가를 보아왔다. 그야말로 단감나무의 가지를 끝까지 움켜쥐고 있다가 까치밥 신세가 되거나, 갑자기 영하의 기온을 맞으면 동상을 입고 떨어지는 단감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이런 비극을 보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또 다시 되풀이 한다.
자신이 붙잡고 있던 것을 놓아야 할 때, 자신이 물러나야 할 때를 실천하는 사람이 진정 현명한 사람이다. 한마디로 ‘인간의 오욕칠정(五慾七情)에서 비롯되는 복잡 미묘한 감정을 깊이 깨닫고, 스스로 조정할 줄 알아야 건강하고 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 사회의 추한 모습을 보면서 때가 되면 저절로 떨어지는 단감나무의 진리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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