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처럼 드라마보다
드라마처럼 드라마보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7.12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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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지/SK에너지
사보편집기자
우리는 드라마 속에 흔히 등장하는 상황들이 가지는 허구성에 대해 익히 알고 있다. 이를테면, ‘사회 지도층 김주원’과 ‘소외된 이웃 길라임’은 현실세계 속에서는 ‘노는 물’이 달라, 여간해선 마주칠 일도 없다는 사실 같은 것 말이다. 우리는 그와 같은 허구에 새삼스레 분노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종종 드라마틱한 상황이 실제로 일어나 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자신을 목격하게 된다. 특히, 연애에서. 어쩌다 마주친 그대가 연인이 되고, 알고 보니 그는 재력과 외모, 인간성, 순정까지 모두 갖춘 진국일, 몹시 희박한 가능성 같은 것을.
그러나 현실세계의 연애에서 우리는 참으로 사소한 일로도 소심해지고, 치졸해지고, 찌질해지며, 모양 빠지는 상황에 직면하기도 한다. 그런 소심한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 쿨한 척 연기를 하고, 이를 알아챈 상대가 나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손발이 오글거리는 이벤트라도 불사해 주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드라마처럼 극적인 장치와 작위적인 상황을 통해 상대의 진심을 알아채게 되고, 오해를 눈 녹듯 사라지게 만들어주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모든 문제들은 주로 모자란 배려와 모자란 이해심, 관계의 서툶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쉽게 범하게 되는 오류는 이러한 문제들의 원인을 ‘나에 대한 사랑의 크기’라 단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싸움에서 승자가 되는 방법은 “나는 네가 날 사랑하는 것보다 널 덜 사랑해” 라는 것을 표현함으로써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다.
드라마속의 남자들은 사랑을 지키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한다. 그것은 권력이 되기도, 지위가 되기도, 가족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지켰다는 극적인 해피엔딩을 맞는다. 그러나 현실세계에 해피엔딩은 없다. 인생은 사랑의 결실을 맺는 것에서 보기 좋게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애인이 나를 위해 포기해야 할 것이 약간의 자존심, 전화요금, 게임에 투자할 시간과 같은 보잘 것 없는 것들인 것은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비록 다툼 후에 절대 먼저 연락하지 않는 것이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라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밤새 수화기 너머로 사랑을 속삭인 대가로 한 달간 허리띠를 졸라매고, 함께하는 시간을 얻는 대신 혼자만의 시간이 줄어듦에 불만을 품어 며칠쯤 돌발 잠수를 감행하는 간 큰 행동을 저질러버리게 되더라도.
현실 속의 우리는 연애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이 버겁다. 꿀 같은 주말 데이트를 만끽하고 나면 월화수목금의 팍팍한 일상이 기다리고 있고, 수요일쯤 되면 누적된 피로에 ‘일요일엔 그냥 집에서 쉴 걸 그랬나’ 싶은 것처럼. 별 것 아닌 일로 서로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대다가도, 아버지를 위해 밥상을 차리는 어머니와, “국이 참 맛있다”는 아버지의 한마디로 언제 그랬냐는 듯 다정해지고 마는 우리네 부모님들처럼 시시콜콜한 일상이 드라마보다 행복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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