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탕주의 병리현상 이제는 그만
한탕주의 병리현상 이제는 그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01.20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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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택/진주문화원 부원장

우리는 마음이 조급하면 정도(正道)를 걷지 못한다. 지름길을 찾으려고 방황한다. 그러다 시간이 더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쉽게 빨리 가려고 한다. 이것이 한탕주의 조급증의 표본으로 단계적 순서를 생략한다.

옛날에는 이런 엉뚱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마음이야 초조하지만 농사일이라는 게 철 따라 순서대로 할 것이지 급하다고 지름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그 속에서 한탕 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긴 할 이유도 없었다. 뛰어야 벼룩인데 거기에 무슨 모험이니 한판 승부니 할 이유가 있었던가 말이다. 급해도 참고 순리에 따랐던 것이다. 반상(班常)은 모두 그 나름대로의 분수에 맞춰 살아갔다.
그런데 현대사회에 들어오면서 기존의 계급질서가 무너짐에 따라 모든 국민에게 평등의식이 팽배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해방 후 총선과 대선 그리고 지방선거를 거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는 이런 의식을 더욱 가속, 증폭시켜왔다. “나도 하면 된다”는 의식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이상이지 불행히도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준비도 없이 마음만 급하니 여기에 갭(gap)이 생기고 갈등이 온 것이다.
누구에게나 기회가 온 건 사실이다. 문호가 열린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더구나 지난 40~50년 전의 고도 경제성장은 우리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이판에 나도......󰡓하는 생각이야 누구에게든 들지 않으랴. 기형적인 우리의 상향의식에 불이 붙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상만 남고 현실은 거리가 멀었다. 빈부의 격차는 점점 커지고 학력에 따른 임금의 차도 더욱 커져갔다. 이대로 있다간 난 영영 낙후할지도 모른다는 초조감이 급기야 한탕주의란 사회병리현상으로 발전해온 것이다. 그 말로는 뻔하다. 종착역은 교도소 감방이란 외길뿐인데, 하지만 이들은 천행(天行)을 믿고 일을 저지른다. 부정, 사기, 공갈, 폭력, 살인까지...... 무슨 일을 못하랴! 목적 앞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한탕만 하면 그 뿐이지, 그 과정이야 따질게 없다.
우린 지금 이런 무리들의 음모 속에 아무런 느낌 없이 살고 있다. 언제 그 불길이 우리에게 미칠지 모른다. 으스스한 기분이 든다. 더욱 무서운 일은 이들이 비행(非行)에 대해 죄책감이 없다는 사실이다. 교도소에 들어가 감방생활을 한들 뉘우치는 법이 없다. 재수가 없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의 눈엔 모든 사회 구석구석이 그러한 비리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이나 보다. 잘못이라면 자기를 이렇게 만든 사회에 있지, 나는 아니다. 더욱 걸작은 사회 비리를 고발하기 위해 하였노라며 떠들면서 자신을 의적화(義賊化)하는 일이다. 더 웃기는 일은 양식 있는 상당수의 시민이 그 소리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의 저변에 깔린 이런 사회현상이 한탕주의를 은근히 부채질하고 있는 또 하나의 요인이다. “결재 서류에 싸인 하나 도장하나 찍어주고 수억 수십억을 먹는 판에 굶는 사람이 도둑질 좀 했기로 소니󰡓 이거야말로 위험한 생각이다. 한탕주의 유혹은 누구에게나 한•두 번쯤 있었을 것이다. 불우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면 더욱 그렇다. 요즘은 우리 사회의 밑바닥에 만연하고 있는 한탕주위는 청소년 비행의 도화선이 되고 있다. 이건 한 판에 승부를 거는 정정당당한 모험심과는 다르다. 처음부터 부정한 승부에 모험을 한다. 여기엔 요행을 바라는 사행심도 물론 작용한다. 경마, 경륜, 도박, 놀이로 한다는 고스톱까지 모두가 한탕의 환상에 빠진 사람들이다.
한자리 했을 때, 한탕 하겠다는 고위 관료나 정치인들. 이들은 모두 한탕 환자다.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남모르는 숫한 고생이 얼마나 많았을까? 힘들게 오른 자리 한탕의 유혹에 빠져 명예, 인기, 존경은 하루아침에 날려 보내고 싸늘한 철창신세를 져야하는 망신살이 붙은 불쌍한 지도자 들이다.
우리는 너무나 가난했기 때문에 분수를 지키며 바르게 살라는 가르침을 받아왔다. 가난한 마음이 곧 편안한 마음이라고... 이거야 말로 가난을 합리화한 가난한 조상의 슬기로운 가르침이다. 우리형편에 거창한 대궐집을 그리며 살다간, 그 갈등 속에 모두 미쳐버릴 것이다. 분에 넘치는 기대는 허황한 욕심으로 금기되어 왔다. 전설도 설화도 가난 투성이다.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고 기다렸다는 우리조상의 여유 앞에서 한탕주의로 치닫는 우리사회의 모습이 부끄럽다. 한치 앞을 못 보는 한탕주의자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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