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숙/시인
“ 저, 이번에 결혼 합니다. (전)도사님, 그때 저랑 한 그 약속 기억 하시죠!”
그때 그는 “ 그런데 결혼식 장소가 교회라서 도사님의 주례사를 못 듣게 되어 정말 아쉽습니다...... 하지만 그날 꼭 오실거죠! ”라며 즉석에서 면죄부도 함께 발행해 주었다.
통화를 끝내니 시간이 20년 전으로 되돌아 갔다. 어느새 서른다섯 살이 된 이 아이를 처음 만난 때가 까까머리 중학생. 그가 직접 만들어준 커다란 선물보따리를 둘러멘 산타클로스 카드가 아직도 내 수첩에 있다. 그날 그는 제 품에서 이 카드를 꺼내주며 제가 어른이 되면 자기 결혼식 주례를 꼭 내가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그때 자기 집을 3층으로 올릴 것이니 거기서 자기네 가족과 함께 살면서 자기 아이들도 좀 가르쳐 달라고 했다.
한편의 명화로도 손색없는 이 그림 같은 장면을 흘러간 세월과 함께 까맣게 잊고 있었던 터라 나는 예정된 일정을 바꿔가며 이 결혼식에 가야했다. 신랑신부 측에 두 곳 다 축하 인사를 해야 했으니 봉투가 얇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거기다 축시 한편을 지어 얹었다.
그런데 토요일인데도 남편이 출근을 하는 바람에 시외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집에서 터미널까지 택시를 타야할 정도로 버스시간에 맞추다보니 시를 두 번 읽거나 붓글씨로 다시 쓸 시간도 없었다.
땅 위에 서면도 20년 전과 달랐지만 지하의 서면은 완전 딴 세상이었다. 상전벽해(桑田碧海)의 그 변화는 사상도 마찬가지라 지하철 표 한 장 바로 끊기도 쉽지 않았다. 옛날 생각이 절로 났다. 그리운 숱한 얼굴이 뇌리를 스쳤다. 20년 전 제자가 시집장가를 가는 마당이니 대학 동기라도 빠른 이들은 이제 엄마 아빠를 넘어 할머니 할아버지 된 이들도 있을 것이다.
사상역에서 뒤로 줄을 섰다가 염치불고하고 옆줄 앞에 선 처음 본 청년에게 1,200원을 건너며 전철표를 부탁했다. 덕분에 결혼식장 지각을 면할 수 있었다. 아무리 축시라도 식순에 없는 순서를 끼워넣는 것은 예가 아니지만 주례자께서 우리의 관계를 고려해 기꺼이 배려를 해주셨다. 신랑신부는 결혼식을 하다가 깜짝 놀라야 했다. 청첩장을 받았을 때 내가 놀란 그 이상으로.
이 험한 세상에서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라 참 좋은 자리에 초대해준 아이들이 너무 고마웠다. 저들 앞에 다시 서기에 50대의 내 모습이 너무 작고 초라했지만. 그래도 제발, 올해에는 이런 아이들 이런 자리가 더욱 많았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경남도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도사님 축시처럼 그렇게 살도록 할게요. 저에게는 언제나 도사님이신거 아시죠~
다시한번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