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
파랑새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01.31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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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진/수필문우회 회장

초등학교 저학년 때 〈파랑새〉란 동화극을 그림책으로 읽었다. 이야기 속 주인공인 틸틸과 미틸 남매는 꿈속에서 이웃집 마녀할머니의 강요로 행복을 가져다 주는 파랑새를 잡아오기 위해 추억의 나라와 미래의 나라 등 여러 곳을 요정들과 함께 갖은 고생을 다 하며 1년 동안 찾아 다녔으나 모두 실패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행복의 파랑새는 어디로 간 걸까요? 여러분, 파랑새를 잡으면 틸틸에게 돌려 주세요. 행복한 생활을 위해서는 파랑새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그 이야기의 허무하기 짝이 없는 결말이다. 다 읽고 나서도 왜 행복의 상징인 파랑새를 다시 잃어버렸는지, 어린 생각에도 몹시 답답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파랑새〉의 작가 마테를링크(Maeterlinck)는 191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수상 이유는 “다방면에 걸친 그의 문학적인 활동을 인정한 것으로 특히 그의 희곡 작업에는 풍부한 상상력과 때때로 동화를 가장하여 드러나는 시적 공상과 신비로운 방식으로, 독자의 느낌과 그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깊은 영감이 드러나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또 하나의 작품 〈펠리아스와 멜리장드〉는 신비, 보이지 않는 운명의 힘, 그리고 현실 너머의 저쪽 세계를 느끼게 하는 그의 희곡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작품세계는 그가 벨기에 겐트대학에서 법률 공부를 마치고 파리에 나와 몇 개월 체재하는 기간 동안 환상문학과 상징주의 작품활동을 하고 있던 빌리에 드 릴아당을 만나 그로부터 받은 자극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빌리에의 영향으로 독일 낭만주의자이며 또한 상징주의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노발리스(Novalis)의 작품세계에도 매료된 마테를링크는 그의 작품들을 번역하기까지 했다. 뒤에 〈파랑새〉를 쓸 때 노발리스의 동화적인 소설 〈파란꽃(Heinrich von Ofterdingen)〉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 소설 속의 주인공인 하인리히는 꿈에서 파란꽃을 본다. 가까이 다가서자 꽃은 모습을 바꾸어 그 속에 한 아름다운 소녀의 얼굴을 비쳐 보였다. 그는 다음날 바로 아우크스브루크로 길을 떠났다. 도중에 여러 사람들로부터 기이한 이야기를 듣고 자연과 역사에 대해서 고찰하는 방법을 배운다. 동굴 속의 은자를 찾아가 책을 빌려보니 놀랍게도 자신의 과거는 물론이고 시인이 된 미래 모습까지 삽화로 그려져 있었다.
그녀의 죽음은 하인리히에게 시인으로서의 결정적인 체험을 안겨주었다. 저 세상은 현세와 결부되고, 꿈이 현실이 되어 현세와 내세의 경계는 사라졌다. 신비적이고 동화적인 세계에서 작가는 더 이상 쓰는 것을 멈추고 작품은 단편으로 끝난다. 하인리히가 꿈에 본 파란꽃은 “ ‘시’ ‘사랑’ 혹은 ‘신과 사람과 자연의 조화와 결합’의 상징”이며, “그 파란꽃이 마틸데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그녀에 대한 사랑은 그러한 것들에 대한 열애”이기도 하다.

마테를링크는 그러한 낭만주의의 노발리스 작품 〈파란꽃〉을 통과하고 넘어서서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작품 〈파랑새〉를 내 놓았다. 〈파란꽃〉의 패러디에 그치지 않고 성찰하는 몽환극 〈파랑새〉를 만들어 보인 것이다. 그리고 침묵과 불안과 죽음의 극으로, 뒤를 이어 등장한 베케트(Samuel Beckett)와 같은 부조리 극작가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모든 사람들이 갈구하는 행복은 어디 있을까? 어쩌면 행복을 꿈꾸는 마음이 파랑새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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