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버스 체험기(1)
희망버스 체험기(1)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7.17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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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영/소설가

비는 끈질기게 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4학년인 딸은 데리고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어릴 때부터 여행에 맛들인 딸이 쉽게 승복할 리 없었다.

 "딸아, 엄마는 소풍을 가는 게 아니고…곤경에 처해 혼자 싸우고 있는 어떤 아줌마를 돕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눈에 힘을 주어 딸을 제압하고 2차 희망버스를 타기 위해 우산을 챙겨들고 집을 나섰다.
 각자 식사를 준비하라고 했으니 우리동네 김밥집에서(참고로 거긴 한줄에 천원대의 김밥이 있다) 두 줄을 사서 가방에 챙겨 넣었다. 딸을 따돌리느라 물을 못 챙겨서 할 수 없이 물도 한 병 샀다. 저만큼 버스가 있는 곳으로 가면서 나는 지나치게 설레고 있는 나를 보았다. 소풍이 아니라고 하기는 했지만…딸에게 슬그머니 미안하기도 했다.
집결지에 도착해서 나처럼 혼자 가는 또 다른 여인을 물색했다. 적절한 여인 발견. 바로 접근, 헌팅은 대 만족. 미리 말하지만 이십대 후반의 그 여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름답고 놀랍고 훌륭했다. 1차희망버스에도 참여했다는 그 여인은 서로 인사를 건네는 순간부터 든든한 안내자이기도 했다. 희망버스 참여 선배이니 비록 내 나이의 절반쯤이지만 나는 그녀를 지금부터 선배로 부르겠다.
드디어 버스가 출발했고 당연히 서로 인사를 하는 순서가 진행됐다. 어떻게 그렇게 고운 분들만 모았던지. 마치 일부러 뽑은 것 같았다. 하기는 우리가 출발한 지역이 고양시인데 시민이 약 82만 명. 버스에 탄 사람들이 약 40여명. 고르고 고른, 뽑히고 뽑힌 사람들이 맞다. 은근한 자부심, 나쁘지 않았다. 참석자 중 출판사 사장님은 우리들 전원에게 우의를 나눠주기도 했다. 내가 인사해야 되는 차례가 되어 나는 김진숙씨가 걱정되어 절대로 다치지 말라는 기원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하기 위해 희망버스를 탔다는 말을 인사를 겸해 했다. 김진숙씨의 이름을 입에 올리자 눈물이 말보다 먼저 나왔다, 눈물이 주책이었다.
 남쪽으로 갈수록 빗줄기는 더 굵어졌다. 부산이 다가오자 아예 소나기성 비가 축복처럼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내 마음이었다. 하나도 걱정이 안 되는 거였다. 이상한 해방감에 젖어 있었다. 늦게 결혼해서 두 아이 낳고 키우고, 와중에 소설은 하루도 쉬지 않고 써야 했고, 시조시인인 남편은 돈 버는 데는 꽝이고, 안 해본 일이 없었던 지난날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홀로 여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나를 위한 여행이 아니라 순전히 누군가를 살리고 싶은 진짜로 우아한 여행이 아닌가.
거의 8시가 다 되어서야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역에선 이미 2차 희망버스 자축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비는 이런 좋은 날 빠질 수 없다며 유유히 내렸다. 우리들도 하는 수 없이 서로를 쳐다보며 실실 웃으며 마음을 눙칠 뿐 비를 원망하지도 않았다. 까짓거 어차피 우리는 비보다 더한 것에 이미 젖을 대로 젖은 후였다.
 억수로 쏟아지는 부산역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 같은 마음과 같은 염원으로 모인 사람들. 아름다워라, 꽃보다 아름다워라. 정말 나는 꿈만 같았다. 희망버스가 나의 20대가 살았던 80년대에다 내려준 것 같았다. 나는 나의 선배를 쳐다봤다. 선배는 내가 뭔가를 걱정하는 줄 알았든지 걱정 마셔요, 하룻밤인 걸요, 하고 위로해주었다. 나도 뭐라고 위로를 하고 싶었지만 쏟아지는 음악소리와 빗소리 때문에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드디어 본격적 진군이 시작됐다. 거의 일만 명의 사람들이 문제의 85크레인 현장을 향해 부산역 주변을 빈틈없이 울타리를 치고 있는 경찰들을 헤치고 영도다리를 건너고 밤의 어둠을 건너고. 임을 그리는 행진곡을 부르며 우리는 나아갔다. 나는 그 밤 비와 함께하는 진군이 아무래도 꿈만 같았다. 참으로 화려하고 장엄한 꿈이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밤이고 사람들이었다.
 어느새 우리들의 진군은 85크레인을 지척에 두고 멈춰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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