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면 괜찮은 것일까?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면 괜찮은 것일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02.12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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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선태/경상대 축산학과 교수

 
몇 일전 민주통합당은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의 도덕성과 자질에 대해 ‘현미경 검증’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새 정부 출범에 지장이 되는 ‘발목 잡는 검증’은 배격하되, 도덕성과 자질에 대해선 충분히 검증하겠다는 것이다. 야당은 정 후보자에 대한 4가지 검증 항목으로 국정 조정 능력, 국면 돌파 능력, 사법관, 도덕성을 제시했는데, 특히 도덕성 검증과 관련해 아들의 병역 면제와 관련된 의혹을 철저히 확인해보겠다고 벼르고 있다.
아들의 병역면제 의혹에 대해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준비단은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정 총리후보자의 아들 우준 씨는 1997년 첫 신체검사 때 1급 현역 판정을 받았지만 2001년 병역처분 변경신청을 한 뒤 같은 해 재검을 받아 디스크(수핵탈추증)로 5급 면제 판정을 받았다. 이런 경우, 고의적으로 병역을 기피했는지를 가려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관련 제도가 무척 복잡한데다 자주 바뀌기 때문에 ‘병역기피’라고 확신할 수 있는 절대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고위 공직 후보자나 그 자녀들의 병적기록을 철저히 뒤져가며 ‘병역기피’의 여부를 따져보는 것은 우리 사회의 큰 불행이자 슬픔이다. 만약 불확실한 근거로 의혹을 제기하면 당사자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후보자에게도 치명적인 도덕적 불명예를 안 길 수도 있다. 또 자칫 정치적으로 발목을 잡기 위해 반대를 위한 반대로 비춰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슬픈 작업이 필요한 이유는 그 동안 우리 사회의 고위층들이 소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얼마 전 영국 왕실의 해리 왕자가 4달간의 아프가니스탄 파병 임무를 마치고 영국으로 귀국했다는 외신을 부러운 눈으로 지켜보았다. 공격용 아파치 헬리콥터 조종사로서 해리 왕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대테러 임무에 실제로 투입됐다고 한다. 해리 왕자의 할아버지인 에든버러공은 2차 세계대전 때 해군으로 참전해 목숨을 걸고 전투에 임했고, 삼촌인 앤드루 왕자는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전쟁에 참전해 조국을 위해 싸웠다. 우리가 해리 왕자의 뉴스를 부러운 눈으로 지켜본 이유는 영국에서는 부모세대에서 자식세대로 이어지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군복무가 의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회지도층들의 부모에서 자식으로 이어지는 자발적 군복무는 우리의 부러움을 사기 충분하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최연소 조종사로 2차대전에 참전했다가 격추당하는 바람에 미군 잠수함에 구조되었다는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부시 전 대통령도 전투기 조종사로 군복무를 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얼마 전 미국의 신임 국무장관으로 임명된 존 케리 장관은 베트남전에 참전했고, 그의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까지 2차대전에 참전해 조국을 위해 싸웠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이명박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역임했거나 후보자로 지명된 이들과 그들의 아들 중 50% 정도가 병역을 면제받았다. 이명박 정부의 첫 국무총리를 맡은 한승수 전 총리는 군 복무 중 대학을 졸업하고 제대 후 1년 만에 대학원까지 졸업했다. 정운찬 전 총리는 입영을 수차례 미루다 32살이라는 ‘고령’을 이유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김황식 현 총리는 시력 문제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박근혜 정부의 첫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다가 닷새 만에 자진사퇴한 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의 첫째 아들은 체중 미달로, 둘째 아들은 질병(통풍)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상황이 이러하니 우리 사회의 고위층들이 각고의 합법적인 노력으로 병역을 기피했을 것이라는 의심이 자연스럽다. 자신에게 주어진 병역의 의무를 지키기 위해 묵묵히 입대한 대다수의 국민들이 그런 고위공직자들에게 좋은 시선을 보내기 만무하다는 말이다. 어떻게 하든지 최소한의 ‘국민의 의무’라도 이행한 자가 고위 공직 후보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그래서 ‘법적으로 전혀 문제없다’는 식의 해명은 왠지 뭔가 아쉽고 힘없는 서민들을 슬프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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