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1일 그 날의 함성을 기억하라
1919년 3월 1일 그 날의 함성을 기억하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03.0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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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실/진주보훈지청 선양담당

유난히 춥고 매서웠던 긴 겨울을 지나 봄의 시작을 알리는 3월이다. 한 해의 첫 달은 아니지만 3월은 우리에게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게 한다.

따뜻한 봄을 맞이하며 흐지부지해진 새해의 결심을 다잡고, 입학과 새학기를 맞이한 학생들의 설렘과 봄의 새로움으로 가득하다. 94년 전 3월 1일 역시 긴 겨울의 터널 끝에 봄을 되찾기 위한 우리 민족의 끝없는 항거와 투쟁의 첫걸음이었다. 1905년 일본에 의해 강압적으로 맺은 을사늑약과 1910년 일본에 주권을 빼앗긴 경술국치 이후로 우리나라는 일본 식민지 지배 하에서 모두가 힘든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식민지 하 10여 년 간의 고통 속에서 우리 민족의 정치적·사회적 의식은 점차 성장하게 되었고, 마침내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가 결정적인 영향을 끼쳐 지식인과 종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거국적인 항일 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 거국적인 민족 독립 운동은 일제의 잔인한 탄압으로 많은 희생자를 내고 결국 성공하지는 못하였지만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와 정신을 대내외적으로 드러낸 사건으로서, 이후 우리나라 항일 운동과 광복의 첫 출발점이 됐다. 올해로 우리는 94주년 3·1절을 맞이했다.

94년 전 그 날의 함성이 있었기에 우리는 세계가 기적이라고 부르는 성공의 역사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광복 후 68여 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일본은 반성과 사죄는커녕 오히려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가하면 역사교과서 왜곡 등의 망발을 일삼고 있다.

또한 얼마 전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에 말뚝테러를 자행하고 윤봉길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일컬은 어느 일본인의 행동은 우리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이웃나라인 한·일간의 진정한 우호관계 구축을 위해서는 역사를 직시하면서 과거의 아픈 상처가 더 이상 덧나지 않고 치유되도록 노력하고, 우리의 고통에 대한 일본의 진심어린 이해와 사죄가 있어야 할 것이다.

올해 3·1절은 주말로 이어지는 금요일, 흔히 말하는 황금연휴였다. 모처럼 찾아온 황금연휴를 맞아 저마다 즐거운 연휴를 보냈을 것이다. 그 연휴의 첫 날만은 전국 각지에서 거행되는 3·1절 기념행사에 동참했기를 바란다.
우리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한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겨보고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느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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