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32호로 지정된 이래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 관리되어오는 고려대장경의 판각 현장이 남해군 고현면 일대라고 주장하지만 오늘날까지 발굴조사를 하지 않는 바람에 증명할 수 있는 뒷받침이 없어 계속 허송세월만 보내고 있다.
고려대장경의 판각성지가 남해라는 것이 학술적으로도 밝혀졌음에도 우리의 역사문화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안타까움에 발굴사업을 다시금 제언 해보며 본격적인 발굴사업이 추진되어야 한다는 여론 또한 날로 높아만 가고 있다.
이와 함께 남해군은 향토사를 재조명하고 굴절된 부분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아 지난 1994년께부터 팔만대장경 남해조판의 개연성이 대두되기 시작 하면서부터 역사에 대한 검증이 계속 되어오다 한때는 요란하게 떠들썩하게 조사에 나섰으나 일시적 용두사미에 그치고 말았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래서 대장도감은 한때 남해로 이전 되어 분사남해대장도감으로 고려대장경에 있어 유일한 대장경판에 판각되어 있음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1897년 9월에 남해군에서는 문화재 전문위원과 동국대와 동아대 박물관장들로부터 “남해의 고려 대장경 판각”이란 논문 등 여러 학술세미나를 통해 대장도감과 분사도감은 남해 한곳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아서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 같은 사실은 지명연구로 찾아낸 “고려대장경 판각흔적”이란 책자를 발행한 鄭상운씨에 의해서도 연구검토가 되어 왔을 뿐 아니라 남해역사연구회 鄭의연 회장께서도 줄곧 연구를 거듭해옴으로서 남해가 성지임이 밝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남해군이 고려대장경 판각의 성지임을 문헌적인 요소와 각 유물의 요소에서도 밝혀진 바와 같이 남해군내 대장경 판각의 성지가 어디인지 정확이 알지 못하는 것은 대대로 내려오는 설화나 전설의 구비 문학적요소가 존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만 한다.
대장경 목판본(木版本)에 남해 지명이 표기(表記)된 사실과 고려사에 도감설치 운영에 대한 남해관련 내용이 등장한 사실까지 접하면서 대사(大寺)라는 지명적(地名的)의미와 종토가 있었고 기와 조각과, 목각 발견에 이어 아기 부처의 발견 등 유적 흔적은 많았다는 게 사실이다. 한편 조판 장소는 고현면 대사리일대가 고려대장경 조판 장소일 것으로 보고 정확한 현장조사를 위해 판각 추정지로 거론되는 대사마을을 비롯한 관당마을과 선원마을 등지를 각계각층으로부터 발굴조사에 따른 기초조사가 전격 제기돼 왔었다.
그러나 관당 앞뜰로 보고 있기는 하지만 정밀조시와 발굴을 통해 구체적인 장소를 찾기란 워낙 광범위한 지역이라 무척 어려운 상태이고 현재는 경지정리로 인한 어려움과 막대한 예산이 투입 되어야만 발굴 작업을 계속 할 수 있기 때문에 예산 타령만 하다 기회를 놓치고 만다는 게 뜻 있는 문화인들의 여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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