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와 시어머니
며느리와 시어머니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03.07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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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숙/시인

시어머니는 아침 형인데 올빼미 형 며느리가 밥상은 차릴 생각을 않자 부부가 안방에서 다투는 중에 시어머니가 갑자기 그 방문을 확 열어 재끼면서 아이들 다 불러놓고 큰소리로 며느리 욕을 한다. 장차 이 집안이 어떻게 될까?
지난 4일 무서운 어조로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하는 준비된 여성대통령 얼굴을 보는 내내 내 머리 속에는 이런 상황이 설정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고마운 우리 시어머니와 내 시집살이의 시간들이 떠올랐다.

나는 서른일곱 살이 되도록 시집을 안 가고 혼자 살려고 데이트 한번을 안 했다. 그런데 97년 2월 1일, 복병의 IMF를 불과 몇 달 앞두고 친정엄마의 강권과 고향 오빠의 소개로 선본지 2주 만에 세 번 만나보고 결혼식장에서 손을 처음 잡아보는 사람과 결혼을 했다. 그런 만큼 그 신혼여행은 범생이의 수학여행이었다. 와중에 나는 어른과 같이 살기를 희망했다. 미혼의 시누이도 있어서 그녀도 어머니랑 한 방을 쓰게 했다. 가구는 달랐지만 한 지붕 아래 결혼한 시누이가 또 함께 살아야 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좋았다. 결혼 한 달이 채 되기도 전에 결혼식 전날 밤 확인할 때까지도 한 푼 없다던 빚을 갚으라고 3500만원 짜리 고지서가 날아들었다. 친정 동생에게 이혼을 하겠다고 하자 “어째서 배웠다는 사람이 그 정도냐! 자형이 노름한 것도 아니고 장남이라 홀어머니 모시고 동생들 뒷바라지 하면서 집을 짓다 보니 대출 좀 받을 수도 있는 건데 그런 걸 하나 이해 못 하느냐! 속이고 싶어서 속인 게 아니다. 나도 작은 형님한테 해준 게 얼마인데. 그리 생각하면 나부터 이혼 감이다…”

이 후로 친정 엄마한테 일언반구도 말 못 했다. 그 후 시어머니와 형제들 밑에 약 5000만원이 더 들어가도. 남 보기에는 남편 직장이 괜찮은 대기업이라 많은 돈을 모았을 것이라고들 하지만 속을 보면 집집마다 이런 내출혈이 있는 법이다.

남편이 두 살 위라 오륙도인데 아이들은 둘 다 아직 중학생이다. 결혼생활 16년이 되도록 퍼머 한 번을 안 하고 내 돈으로 화장품 하나 안 사고 10만원 이상 가는 옷 한 벌을 안 사 입고 살았다. 하지만 이는 하나도 자랑거리가 못 된다. TV 앞에 앉아서 저 청문회만 보면! 그리고 또 물어야 한다. 나는 왜 위장전입을 안 해도 되는데 갈사만과 광양만에다 땅 투기를 못 하는가? (난 아직도 광양만과 갈사만이 순천만처럼 되었어야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며느리를 향해 만약에 우리 시어머니가 박대통령의 담화문 어조로 “너는 왜 맨날 신문이나 보며 돈도 안 되는 글이나 쓰고 붓글씨나 쓰느냐!”라고 호통을 쳐댔다면 나는 이 집에서 못 살았을 것이다. 다행히도 어른은 생전에 그런 말씀이 한마디도 없었다. 그 덕분에 지금 우리 아이 둘이 고아가 안 된 것이다. 

박대통령은 시집살이는커녕 결혼도 안 했으니 며느리의 이런 심정을 모를 것이다. “4대 중증질환 100% 보장은 선거 캠페인용” 이라는 진영복지부장관의 후보 발언을 뒤집어 보면, 어려서는 청와대가 집이었고 그 후에도 집도 6억도 가만있어도 그냥 줬으니 경제적인 문제로 자폭을 선택하는 노인들과 극빈층 사람들의 그 절규를 저분들이 어찌 알 것인가. 결혼 후 생전 처음 빚 독촉 고지서를 본 순간 내 머리에 이혼이란 글자가 떠올랐을 그때 내 뒷통수를 친 친정동생의 그 한 마디가 오늘 나를 우리 두 아이들의 엄마로 만들었다. 박대통령은 이 상황에서 지금 누구의 자문을 받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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