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슨의 시
테니슨의 시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03.14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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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진/수필문우회 회장

테니슨(Alfred Tennyson, 1809-92)은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82)과 같은 시대를 산 사람이다. 두 사람 모두 같은 해에 태어나서 대영제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일컬어지던 빅토리아 여왕 치세기간에 활동했다.

다윈이 1858년에 ‘진화론’을 발표했을 때 유럽사회가 받은 충격은 컸다. 신이 인간과 동물들을 오늘의 형태로 창조했다는 성경 말씀을 믿어 온 많은 사람들이 다윈의 설을 접하고는 불안과 회의 속으로 빠져들어, 앞으로는 무엇을 읽고 무엇을 의지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가장 위안이 되는 글이 있었다. 바로 테니슨의 서정시였다. 그가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를 다닐 때 제일 가까웠던 친구이자 자기 누이의 약혼자였던 핼럼(Hallam)이 1833년에 급사했다.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테니슨은 ‘세계는 신의 질서가 지배하는가, 아니면 맹목적인 자연에 의한 혼돈에 지나지 않는가’ 하는 물음과 고투하면서 17년간 틈틈이 써온 시 (인 메모리엄(In Memoriam))을 1850년에 간행했다. 사람들은 이 시를 종교와 과학의 멋진 융합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는 이 시집으로 계관시인으로 서임되었고, 단기간에 중판을 거듭해 300파운드라는 거액의 인세를 획득했다.

 1964년 테니슨은 (이녹 아든(Enoch Arden))이란 ‘이야기 시(Narrative poetry)’를 새로 발간했다. 이 시는 두 사람의 착한 남자 이녹과 필립(Philip) 그리고 또 한 사람의 착하고 정결한 여자 애니(Annie)의 이야기이다.

가난하지만 활달하고 적극적인 이녹은 필립을 제치고 애니의 사랑을 쟁취해 그녀와 결혼을 한다.  이녹은 애니의 간절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먼 곳에 가서 장사로 돈을 벌어오기 위해 상선을 탄다. 그동안 심한 곤궁에 처하게 된 애니와 아이들은 이웃에 아직 미혼으로 남아 있던 필립의 조심스러운 도움을 받는다.

그렇지만 이런 일방적인 선의가 그냥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는 없다. 아이들도 그 사람을 아빠같이 의지하며 따르게 되고, 이들을 지켜보는 이웃들도 사리에 합당한 그들의 결합을 바라게 되었다. 애니는 그래도 1년만 더, 한 달만 더 하고 이녹을 기다렸지만 더 이상 버틸 수가 없게 되어서야 두 사람은 결국 합치게 된다.

그때서야 누가 봐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급속히 늙고 쇠약해진 이녹이 고향으로 돌아온다. 자신이 떠나있는 동안 사랑하는 가족이 어떻게 살아왔고 또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알게 된 그는 그들의 안정된 삶을 무너뜨리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그들 앞에 끝까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서 살다가 병들어 죽는다.

이 책이 영국에서 출판된 첫날 1만4000부가 매진되었다고 한다. 그 시절도 베스트셀러의 규모는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테니슨이 빅토리아여왕 시대의 시인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시인인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당연히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의 시는 너무 감상적이고 미문 일변도이며 대중영합적이라는 혹평을 하는 비평가들이 많다. 그러나 그가 활동하고 있던 당대에는 가장 인기 있는 시인, 대중의 사랑을 받는 시인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달지 못한다. 그는 ‘민중의 시인(The Poet of the People)’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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