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재발견
여행의 재발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03.17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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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인숙/진주보건대학교 관광계열 교수

우린 미지의 장소로 가는 여행을 늘 꿈꾸며 산다. 여행의 목적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지만 마음속에 채워져 있는 스트레스를 비우고, 즐거운 추억을 담아오는 점이 일차적 공동목표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의 경우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따라 많은 곳을 여행했다. 시간만 나면 배낭과 코펠을 꾸려 계절에 관계없이 유명관광지를 다녀왔다. 국내의 관광지와 박물관 등을 다녔던 목적은 사회 책에 나오는 장소를 직접 다녀와 보는 것과 일단 많은 곳을 짧은 시간 안에 보고 오는 것이었다.

방문지 명패 앞에서 사진도 매우 열심히 찍었다. 디지털 카메라가 널리 사용되기 전까지는 필름 카메라로 열심히 찍어 모두 현상하고 앨범에 추억담까지 써가며 정리하였다.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더니 최근 앨범을 들추어보니 그 때의 기억이 고스란히 증거물처럼 수록되어있다.

그 후 20대와 30대 후반까지 한 장소에서 몇 년을 안정적으로 살지 못하고 나라를 넘나들며 돌아다녔다. 그러면서 그 바쁜 일정 속에서도 빠뜨리지 않았던 것은 바로 ‘여행’이었다. 여기 저기 옮겨 다니며 여행과 같은 삶을 살면서도 ‘여행’이란 이름의 움직임이 또 필요했던 것 같다. 언제 이곳에 다시 와보겠느냐는 생각으로 그 주변 관광지와 박물관 등을 시간이 날 때마다 방문하였다.

돌아보면 정말 많은 곳을 너무나도 바쁜 일정으로 다녔다. 한꺼번에 여러 곳을 다녀오는 일정이면 지명이 기억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일단 적은 비용으로 무척 절약하며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방문하는 것이 나의 여행방법이었으며 심지어 이런 방식의 여행만이 가장 최선이라고까지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여행의 방식을 달리하게 된 계기를 만나게 되었다. 우연히 알게 된 부부교사 가족과 여행을 함께 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보름 정도의 긴 일정으로 두세 곳 정도에서 머무르며 하루에 두 개 정도의 방문 일정을 만들었다. 아침 일찍 숙소를 떠나 주변 지역을 산책하고 점심식사 후 숙소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늦은 오후 다시 주변을 돌아보고 저녁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와 하루를 마감하였다. 이삼일 내에 열군데 이상을 다니던 나의 방식과는 완전히 달랐지만 중년이 된 시점에서 알게 된 이 여행방식으로 새로운 깨달음을 가지게 되었다.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하나라도 더 보려고 다녔던 나는 다리가 아프고 힘이 달리는 상황에서도 참고 또 참으며 다녔고, 그렇게 한 여행의 마무리 시점에서는 몸이 아프기도 했었다. 하지만 점심 후 휴식을 취하고 몸을 정비하여 다시 일정을 시작해보니 무리가 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최근 스페인 서북부에 있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두 달의 일정으로 도보한 후 생각의 변화되는 과정을 담은 책을 한 권 읽었다. 이 순례길은 파울로 코엘료가 쓴 ‘순례자’라는 책에서 소개되어 널리 알려졌으며, 우리나라 제주 올레길이 이 길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렇게 두 달의 여정이 도보로 시작되었고 걸음걸음마다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았다.

무엇을 많이 보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경쟁에서 이기느라 쌓여있었던 찌꺼기들을 털어내고 새로운 출발의 기회를 만든 것이었다. 여행의 새 방식을 체험했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깊은 생각에 젖었다. 조급하고, 앞서가야 하고,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감에서 이제는 벗어날 시점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다는 말을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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