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
이상한 나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7.20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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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숙/시인

방학이다. 그런데 방학이 아니다. 분명히 방학식도 하고 성적표도 받았는데.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방학을 한 다음날부터 곧바로 보충수업을 하는 이유를. 학교에 따라 차이는 좀 있지만, 이 보충수업도 공부를 못하는 아이를 위한 보충학습이 아니다. 대부분의 학교들이 상위권 학생들을 중심으로 특별반을 만들어서 집중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시골읍내 중학교에서도 상위 30등 안에 든 아이들만 보충수업을 받고 있다. 여기서도 빈익빈(貧益貧)부익부(富益富) 현상이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다. 공교육(公敎育)현장이 이러니 이를 어쩔 것인가, 이런 공교육을 어떻게 믿으라는 것인가.
교육이 무엇인가. 교육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가. 방학이 무엇인가. 방학을 왜 하는가. 보충수업이 무엇인가. 왜 상위권 아이들을 더 보충수업을 해야 하는가. 절실히 되물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결론은 ‘확실히 이상한 나라’다.
예전 같으면 교실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왕따의 대상이 되고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보충수업의 대상자가 되었다. 공부 좀 잘한다고 선생님들이 그 아이를 예뻐하면 아이들은 이 아이를 따돌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공부를 좀 한다는 아이들이 공부를 못하는 아이를, 조손가정이나 한 부모 가정의 아이들이 자신과 같은 처지에 아이들을 앞장서서 더 괴롭히고 따돌리는 경향이 짙다. 현장 교사들도 이를 알고 있다.
그러나 ‘내 짝꿍 최영대’에 나오는 그 선생님처럼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교사들은 보기 드물다. 대다수의 초등학교들이 4ㆍ5ㆍ6학년 고학년담임들을 신규발령자나 10년차 미만의 젊은 여선생님들 중심으로 편성하다보니 아이들이 담임선생님을 선생으로보다도 친구처럼 생각하는 현상이 날로 가속화 되고 있다.
또 중고등학교 교무실에서는 가능한 한 서로 담임을 안 맡으려고 하다가 마지못해서 학급들을 떠맡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여기에 ‘선생님의 사랑은 무조건 성적순’ 외에 어떤 교육적 효과를 크게 기대할 것인가.
그러니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더불어 살아가는 능력이 세계 최하위권이라지 하지 않는가.
이런 결과가 나와도 방학이 전국적으로 보충수업으로 채워지고 있다. 지역에 따라 학교에 따라 다소 다르겠지만 중3ㆍ고3은 오히려 보충수업을 하지 않고 1ㆍ2학년들이 더 집중적으로 볶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중3ㆍ고3 학생들이 컴퓨터나 TV 앞에서 편히 쉬는가. 결코 아니다. 이 수험생들은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스스로 알아서 더 처절한 혈투(血鬪)를 하고 있다. 이를 학교가 너무도 잘 알기에 놔두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니 방학이랍시고 아이들이 읽고 싶은 책 한 권을 맘 놓고 읽을 수가 없다. 이들의 독서가 마치 학원 앞 길가에 서서 어묵이나 컵라면을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제대로 씹지도 않은 채 입에다 막 밀어넣는 꼴이다.
우리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고생들이 시험공부용이 아니라 ‘그냥 한번 읽고 싶어서’ 심훈의 ‘상록수’ 전문을 읽는다면 누구든 동혁이나 영신이에게 안 빠져 들 수가 없을 것이다. 이들이 방학이라고 자기 방 침대에서 밤늦도록 뒹굴며 토마스하디의 ‘테스’를 한번이라도 읽어본다면 이번 고대의대생성추행사태와 같은 비극을 자초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방학은 방학다워야 한다. 평소에 학교는 담임도 수업도 급식까지도 모두 일률적이므로 방학기간이나마 자율로 주어져야 아이의 개성에 따른 창의적 활동 시간을 확대시킬 것이 아닌가. “아침 일찍 교복 입고 책가방을 메고 학교 보충수업 가는 이런 방학을 할 바에야 차라리 방학 없는 연중 수업 하는 학교로 하지. 뭐 하러 방학식을 해서 우리가 스트레스만 더 받게 하는 거야”
땡볕에 얼굴이 벌그렇게 탄 중1여학생들의 하소연이 가슴을 때린다. 아, 언제쯤이면 우리 아이들이 엉터리 어른들이 씌우는 이 질긴 굴레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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