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회에서
동문회에서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04.17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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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숙/시인

지난 주 중학교동문회가 있었다. 나는 동문회나 동창회나 반창회 이런 걸 별로 안 좋아했다. 그래서 지금도 계 하나가 없다. 그런데 지난해 그 동문회를 우리가 주관해야 한다고 계속 연락이 오는데 가까운 곳에 살면서 안 나갈 수가 없어 나갔다.

그리고 이왕 나간 것, 나도 30만원을 냈으니 그대로 따라 갈 수가 없어서 1년간 세워온 그 행사계획서 대부분을 1달 남짓 남겨놓고 거의 다 뜯어 고쳤다. 예를 들면 점심식사비로 2만원씩 200명분 400만원 잡아 놓은 뷔페 비용을 6000원 비빔밥으로 바꾸고 돼지 2마리를 사서 당일 행사장에서 삶아 내기로 했다.

촌에서 하는 행사는 촌 실정에 맞아야지 우리가 2만원으로 그 밥상을 차려내 봐야 잘 먹었다 소리는 별로 안 나오니 차라리 그럴 바엔 옛날 잔칫집의 분위기로 모인 사람들의 어릴 적 향수(鄕愁)를 자극하자는 게 나의 취지였다. 다행히 임원진과 동기들이 3년 내내 반장한 사람의 건의라고 흔쾌히 공감을 해줬다.  

그랬더니 그러고도 거기서만 100만원이 더 남아서 술값에 떡값에 과일값 까지 나왔다. 그러자 무대 설치비와 사회자 인건비, 경품준비비, 모교 인사비 외에는 더 들어갈 돈이 별로 없었다. 동문회에서 행사책자를 만들어줘 우리는 약 1000만원으로 행사를 다 치르고 500만원 정도를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후배들은 하동진을 비롯한 가수도 부르고 각설이도 부르고 하느라 우리보다 두 배나 되는 경비를 썼다. 다들 운동장에서 초대가수와 함께 같이 노래 따라 부르며 춤추고 놀 때는 모두들 칭찬이 자자했다. 이번 기수들 준비를 너무 잘 했다고.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아쉽다. 전교생이 20~30명으로, 불과 30·40년 사이에 딱 10배로 쪼그라든 우리나라 농촌의 학교 현실을 생각하면 입에 든 밥이 모래알 같아서 잘 넘어가지가 않는다. 이런 운동장에서 해마다 동문회라고 꼭 술을 마시고 초대가수와 함께 놀아야 하는가.

졸업 후 35년 만에 처음 만난 Y와 S는 나를 보자마자 “너 그때 참 공부 잘 했지. 정말 부러웠는지! ” 고 하더니 다음날 까지도 전화로 그 말을 반복했다.
그러나 그들이 너무 부러웠다. 남자인 Y가 사위를 봤는데 나는 아직 큰아이가 중학생이니.  

S는 그때 학과공부는 별로 않고 중 1때 담배를 더 열심히 배웠으나 이제 아이들도 다 키워놓고  동창회 책자에도 어엿한 제 회사의 광고를 낼 정도로 폼 재며 왔다. 이들이 동창생이 아니라 마치 인생의 대 선배 같았다.
옛날에는 이 친구들이 국사나 영어 다 못 외워 교실에 남아 끙끙대며 숙제를 했지만 지금은 반 친구들 다 돌아간 교실에 나만 혼자 남아 있는 그런 기분이다.

그러고 보면 학교 다닐 때 크고 작은 재작을 지기거나 약간의 말썽을 부리는 아이들이 그저 교칙에 따르고 선생님 말씀에 순종하며 공부만 하는 아이들보다 더 일찍 사회를 알고 세상을 배우고 자기 길을 개척해 나가는 경우가 많다. 지금도 우리 학교나 교육당국은 이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일제고사를 치는 기대와는 달리 전국의 초중고 아이들이 국영수를 중심으로 한 학과 공부를 다 잘할 수는 없다. 그러면 교육 현장에서는 학과교육 못지않게 아이들의 적성과 개성에 맞는 그만의 소질을 개발할 기회가 주어줘야 한다.

동창들은 물론 선후배들도 반갑게 맞아줬지만 나는 일찍 시집장가 가서 아이들 다 키우고 나온 친구들이 제일 현명해 보였다. 그들이 라이프사이클이라는 말 자체를 몰라도 이 말이 그들에게는 필요가 없어 보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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