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열반(涅槃)과 해탈(解脫)
진주성-열반(涅槃)과 해탈(解脫)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2.25 13:5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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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봉 대종사/진주 여래사 주지·전 진주사암연합회 회장
동봉 대종사/진주 여래사 주지·전 진주사암연합회 회장-열반(涅槃)과 해탈(解脫)

불교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열반(涅槃)과 해탈(解脫)이다. 일반적으로 열반과 해탈을 같은 뜻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근본경전에 의하면 분명히 차이가 있다. 우선 열반과 해탈은 말의 뜻에 차이가 있다. 열반은 ‘불이 꺼진 상태’를 의미하는 ‘니르바나’를 번역한 것이고, 해탈은 ‘벗어났다’는 의미의 '모크샤’를 번역한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은 탐(貪)·진(瞋)·치(癡) 삼독(三毒)의 불길에 휩싸여 있다고 하셨다. 열반은 세상을 불태우는 삼독의 불길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의미한다. 부처님께서 출가한 목적이 인생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고 할 때 그 괴로움의 완전한 소멸인 열반이야말로 최고의 가치이며,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러한 열반을 성취하는 것이다.

해탈은 사람이 어떤 구속이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해탈은 구속이나 속박의 수만큼 많지만, 크게는 욕탐에서 비롯된 번뇌(煩惱)로부터의 해탈과 진리에 대한 무지, 즉 무명으로부터의 해탈이 있다.

다시 말하자면 열반은 불교 수행의 궁극적 목적으로서 해탈을 성취한 것을 말하고, 해탈은 수행을 통해 번뇌가 소멸될 때 번뇌에서 벗어난 상태를 의미한다. 해탈이란 마음에 걸림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즉 자신을 속박하고 있는 것들에서 벗어남으로써 마음이 자유로운 것을 말한다. 해탈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을 속박하고 있는 맺힌 것을 풀어야 한다.

생사에서의 해탈이란 죽음을 망각하고 사는 것도 아니고,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죽음을 생각하면서 자신이 자유롭게 선택한 진정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생사해탈이다. 생사는 허망한 망념을 자신의 존재로 착각하는 무명과 욕탐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아 욕탐을 버리면 우리의 마음은 욕탐에서 해탈하게 되는 것이다. 불교의 수행은 이처럼 허망한 존재를 취하지 않고 마음이 해탈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어느 누구라도 의지만 있다면 수행할 수 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는 불성이 있다”, “누구라도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 누구라도 수행을 통해 열반과 해탈의 경지로 갈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우리 누구도 열심히 수행하면 열반과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음을 깨달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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