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진/수필문우회 회장
한 초나라 상인이 방패와 창을 팔고 있었다. 그는 먼저 방패를 들고 “나의 방패는 얼마나 단단한지 어떤 것으로도 꿰뚫을 수 없다”고 하고는 다시 창을 들고 “내 창은 얼마나 날카로운지 어떠한 것이라도 다 꿰뚫을 수 있다”고 자랑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그렇다면 당신 창으로 당신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는가?”하고 물었다, 그 상인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무엇으로도 꿰뚫을 수 없는 방패와 무엇이라도 다 꿰뚫을 수 있는 창이란 논리적으로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는 ‘모순(矛盾)’이란 말의 유래가 된 일화다. ‘한비자’ 난일(難一) 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또한 세상 사람들이 전쟁에 대비해서 언제나 보다 완벽한 방어용 무기나 공격용 무기를 다같이 갈망하며, 그 무기 개발을 추구해 왔다는 사실도 일깨워주고 있다.
두 종류의 무기 중에 어느 한 종류의 무기가 획기적으로 진보하면 다른 한 쪽도 이에 따라 끊임없이 함께 개선되어 왔고, 시대와 지역에 따라 발전하는 그 무기체계에 따라 전술도 변화해 왔다. 알렉산더 대왕이 원형방패와 기다란 창을 지닌 보병들을 밀집대형으로 편성해서 전투에 투입함으로써 고대그리스를 통일하고, 페르시아 정복과 동방원정을 달성했던 일은 그 유명한 예 중의 하나이다.
지난 20세기 제2차 세계대전을 신속히 끝내기 위해 개발되고 사용된 것이 핵무기였다. 단 2발의 원폭 투하로 세계대전은 종식되었으나, 핵무기가 그 놀라운 물리적 파괴력 외에도, 사람에게 치명적인 방사능을 다량 발생시키고 지표 상에 오래 잔존시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구 상에 핵전쟁이 발생하면 전쟁 당사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인류가 절멸하게 될 위험이 따른다. 이러한 핵무기의 특성 때문에 2차 세계대전 이후 40여 년 동안 격심한 동서냉전이 지속되고, 몇몇 지역에서 격렬한 국지전이 치러졌지만 핵을 사용하는 전면전으로는 발전하지 않았다. 동서진영의 핵무기의 증산과 배치는 계속되고 운반수단도 계속 보강되었지만, 그것은 상대가 공격해오면 신속하게 반격하여 다 같이 공멸하게 된다는 ‘공포의 균형’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북한은 연일 미국을 향해 핵도발을 감행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소규모 핵도발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공포의 균형’이라고 할만한 핵전력은 아예 보유한 적조차 없고, 어떤 효과적인 방어시스템도 구축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으로서는 북한이 핵도발을 해온다 해도 그 좁은 땅에 보복을 하겠다고 핵까지 동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재래식 무기만으로도 북한의 전쟁수행 능력을 일소하는 데 긴 시간을 요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도 그러한 북한을 돕기 위해 이제 겨우 발전단계에 들어선 온 나라의 힘을 기울여 미국과 맞서는 모험을 감행할 이유는 없다.
북한에 남은 유일한 카드는 남쪽의 동포를 핵으로 공격하거나, 중동에 핵무기를 제공하겠다고 미국을 협박하는 것이겠지만, 그것은 스스로의 입지만 좁힐 뿐 별 신통한 반응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북한의 핵 위협에 꿈쩍도 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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