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벼 이야기
통일벼 이야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5.30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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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옥/(사)진주문화사랑모임
상임이사
통일벼! 지금은 그 이름조차 사라지고 없지만 나의 33년 공직생활에서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 70년대의 통일벼 보급이 아니었던가 생각한다.

 지금은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해 쌀도 많이 변신했다. 키크는 쌀과 다이어트 쌀, 혈압과 당뇨를 다스리는 쌀이 시험재배중이거나 이미 생산되고 있다. 수입쌀에 대응하기 위해 하이아미, 해오르미 같은 친환경기능쌀이 출시되고 있는 반면 쌀이 남아 돌아 생산자인 농업인은 농업인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정부 또한 쌀소비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70년대만해도 쌀밥은 커녕 보리밥, 쑥밥, 무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고구마 한뿌리로 점심을 때워야만 했다. 대부분의 가정은 어른이나 귀한 손님의 밥상에서나 겨우 쌀을 구경할수 있었고, 필자도 어린시절 어른이나 손님께서 쌀이 섞인 밥을 남기지나 않을까 식사가 끝날때까지 기다리던 생각이 나기도 한다. 그 시절 식량만이라도 자급하기 위해 농가에 적극 보급하게된 벼가 통일벼(IR667)다. 미질이 다소 떨어진다는 단점 때문에 농가에서는 쉽게 받아 들여지지 않았고 정부에서는 계획면적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게 됐으니 공무원들의 고충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밤낮없이 담당마을에 상주하면서 통일벼 재배기술을 교육하고 일일이 농가의 볍씨담그기와 못라지설치 현장을 방문 조사해 통일벼 볍씨를 담그지 않은 곳은 다시 담그게 했고 심지어 일반볍씨를 파종한 못자리가 발견되면 가차없이 갈아 엎어 통일벼 볍씨로 다시 파종하게 했다. 지금이라면 어림도 없었겠지만 그때는 부족한 식량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어쩔수 없었다고는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쉬움도 많다.

 그뿐이 아니었다. 담당별로 도면을 작성해 일일이 통일벼 재배현황을 녹색으로 표시해 상부기관의 확인에 대비했고 정부에서는 그것도 믿지 못해 시군별로 공무원들을 교체해 못자리 면적을 일일이 확인하는 전수조사를 했고 면적확보가 부진한 공무원은 징계를 받을 정도였다. 또한 수확할 때까지 병해충 피해도 막아야 해 일선 공무원들은 파종에서 수확때까지 자나 깨나 통일벼 생각뿐이었다. 이런 노력으로 세계에서 반당수확량이 가장 높은 성적을 올렸고, 1977년도에 쌀 3700만석을 생산, 드디어 녹색혁명을 이루어 쌀자급이 가능하게 됐다.
 
 보리고개다 뭐다해서 먹거리 걱정을 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건강을 위한다며 잡곡밥을 선호하고 쌀재고량 때문에 정부가 골머리를 앓는 것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러나 쌀은 자급됐다고하나 쌀을 제외하고는 엄청난 곡물을 수입하는 나라이고, 세계에는 지금도 굶어죽는 사람이 많고 가까이는 북한동포들도 굶주리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 시절 우리들의 권유에 적극 합심해 식량자급과 먹거리를 해결해준 우리 농업인들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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