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의한 역사왜곡
중국에 의한 역사왜곡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05.23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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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곤/밀양동명고 교사ㆍ경남국학원 이사
 

지금까지 우리는 원래 모습이 무엇이며 어떤 정신과 사상이 우리 고유의 것이었는지 올바르게 알지 못한 채 살아오고 있다. 그 이유는 이(異) 민족의 침략 전화(戰禍)속에서 귀중한 史書가 불타 소실되고, 승자의 치밀한 계획 속에서 조작, 왜곡된 역사기록으로 우리 고유 천지인(天地人) 정신인 仙道의 맥이 단절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사가 왜곡된 이유로 크게 사독(四毒)을 들 수 있는데 첫째 ‘사대주의사관’에 의한 중독(中毒) 둘째 ‘식민사관’에 의한 왜독(倭毒) 셋째 지금 역사 연구의 주류를 이루는 ‘실증사학’에 의한 양독(洋毒) 넷째 우리 스스로에 의한 자독(自毒)을 들 수 있다.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주의 사학의 선구자인 단재 신채호 선생은 우리 민족의 역사가 왜곡된 이유로 중국이나 일본에 의하여 말살되고 왜곡된 원인도 있지만 얼이 빠진 우리나라의 역사가들에 의해서 스스로 왜곡된 된 것이 더욱 통탄할 일이라고 했다. 대표적인 예로 고려시대 사대주의 사관에 물든 김부식의 ‘삼국사기’ 중僧)일연의 외래종교인 불교 입장에서 기술한 ‘삼국유사’ 그리고 조선시대 서거정의 유교에 바탕을 둔 ‘동국통감’을 들 수 있다.

아직도 이 책들이 대한민국을 대표하고 있는 역사책이라고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한편 고려인종(1135년) 묘청의 자주적인 서경천도운동이 실패하면서 중국 중심의 사대주의 유학자들이 집권하는 계기가 되어, 고려는 오랫동안 중국의 속국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의 선도사상, 문화, 학술, 종교, 풍속이 사대주의의 노예가 된 원인은 바로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이 실패한데 있다”라고 단언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 사건이 바로 고래(古來) 이래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기마민족의 진취적이고 독립적인 자주사상이 사대적 유교사상으로 바뀌는 전환점이 되었으므로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 을 우리 역사상 대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 결과 조선의 통치 이념은 중국 중심의 정치 이데올로기인 주자학의 영향 속에서 5백년을 보내야 했고 정체성을 상실한 조정은 지나족(중국)을 상국으로 여겨야 했다.

◆중국(지나족)에 의한 역사왜곡-중국(中國)은 철저하게 자기중심으로 세계를 보았다. 나라 이름도 그런 관점에서 스스로 중심이라 했지만, 원래 중국은 지나(支那; 중국의 옛 이름, 고조선이 중원을 다스릴 때 변방 가지의 나라였다는 의미)로, 1911년 손문의 신해혁명 이후 중화민국(약자로 중국)이 되었는데 우리는 중국이라 하면 역사가 오래된 나라라고 착각하고 있다. 옛날에는 일기예보를 할 때 남지나해, 동지나해라 했고, 아이들이 즐겨먹는 중화요리도 어른들은 청(淸)요리라 했으며. 지나가 영어로 CHINA인 것이다. 지나족은 주위 민족들을 오랑캐라며 동이(東夷:우리나라를 비하함),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이라고 업신여겼으며, 역사를 기술하는 방법도 춘추필법(春秋筆法)이라 해 첫째 爲邦避隔(자기나라의 허물 된 것은 쓰지 않는다), 둘째 我尊他卑(자기는 높이고 남은 낮춘다), 셋째 詳內略外(제 것은 상세히 말하고 남의 일은 줄여서 적는다)는 자기 중심적인 관점으로 역사를 썼다.

조선시대 때는 지나의 압력으로 ‘고조선비사’, ‘대변설’, ‘도징기’, ‘삼성밀기’, ‘옥추경’, ‘조대기’, ‘지공기’, ‘통천록’, ‘표훈천사’, ‘천부경’, ‘삼일신고’, ‘부도지’, ‘참전계경’ 등 배달민족의 찬란했던 역사와 정신을 기록하고 있는 책들을 금서(禁書)로 지정하여 금서를 소장하거나 읽는 자를 색출하여 극형에 처하고 그를 신고한 자에게는 관직과 재물을 주어 한민족의 얼과 정신을 말살했다. 국혼부활로 위대한 우리의 역사를 복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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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성 2013-09-27 19:19:17
바로잡아야 할 우리역사...누가 우리역사를 써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