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그 길에 서서(하)
5월, 그 길에 서서(하)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05.2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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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두/경남도청 사무관/시인

 
성성한 여름이 다가온다. 얼마전에 석가탄신일이 지나 갔지만, 여름이 온다는 하지(夏至)가 다음달이니 아직도 그 푸르른 5월이다.

나는 독실한 신자라기보다 부모의 영향으로 불교를 염원하고 있다. 청년시절 무량의 속절없는 독신(獨身)으로 칩거하며, 산새와 뻐꾸기와 바람과 물길소리에 세월을 살고자 해서 송광사를 찾았었고, 신부감이 ‘이런 사람이면 좋겠다’는 나의 청을 스님이 지어주신 가호(明救)도 선암사다.

철마다 계절마다 찾아 나선 곳도 성주사요, 폭설 내리던 날 아침길을 도반들이 걸어간 뒷길을 따라 간 곳도 흥덕사다. 지난 지리산 집중호우때 50여명 목숨을 잃어 시신이라도 찾아주기 위해 갔다가 원혼을 묵상으로 올려드린 곳도 대원사다.

목표를 이루고자 설악산 꼭대기의 봉정암과, 고려말엽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가 지킨 암자로서 부처가 되었다는 전설어린 오세암, 간절히 기도하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남해 보리암, 5·18 광주의 무등산 규봉암등 5월만이라도 바라는 소원과 뜻을 이루고자 사찰이나 교회나 성당을 찾아 빌어보라?.

#. 5월의 청춘이란, 결코 평탄치 않다. 수없는 좌절과 고통과 갈등이 똬리를 틀고 앉아서 사람의 애간장을 녹이지만, 한세상을 잘 살았다고 널리 알려진 사람들의 자서전을 보면 모두 고통에 굴복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희망은 좌절, 실패, 슬픔, 불행, 고통 같은 부정적인 것들을 통해 더욱 선명해진다.

희망은 인간에게 태양과 같은 것이고 인간을 아름답게 만드는 기적이다. 행복은 누가 만들어 줄까? 바로 자신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도 내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잠시 기쁠 뿐이다. 코를 꼭 쥐고 입을 열지 않은 채 얼마쯤 숨을 쉬지 않을 수 있는지 참아보라? 30초를 넘기기가 쉽지 않다. 숨을 쉬지 않고 참아보면 그제야 비로소 내가 숨쉬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훗날 병원에 입원해서 산소 호흡기를 끼고 숨을 쉴 때야 비로소 숨 쉬는 게 참으로 행복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이미 행복을 놓친 것이다. 희망은 억만금으로도 살 수 없다. 마음만 활짝 열면, 희망은 공짜니까?

#. 5월은 내겐 아주 특별한 날이다. 일주문을 지나 억급의 죄를 다스리는 사대천왕이 떡하니 내려다보는 한 가운데 길의 끝에는 내가 가야할 길이 보이고, 인생길 굽이굽이 돌아 온 길도 남은 길도 그 곳에 있는 듯 하다.
신을 믿는 모든 이들은 여기가 마음 편한 곳이라 여기면서도, 산중턱의 산사(山寺)에 올라서면 걸어 온 길과 남은 길, 후회와 막급(莫及)의 생각들이 묻히고 세월은 돌고돌아 지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앞에 노년이라는 것이 다가설 것이다. 나의 행복한 첫사랑과 마지막 가을도 이곳에서 맞게 될까?. 이 말을 법정스님의 법어로 끝내려 한다. ‘봄날은 갑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미처 다하지 못한 이야기는, 새로 돋아나는 꽃과 잎들이 전하는 거룩한 침묵을 통해서 들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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