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의 만족 (덕행의 삶)-2
자기 자신의 만족 (덕행의 삶)-2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06.02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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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걸/울산 새부산 콘크리트 회장·한국문인협회 회원
 

요즘 세대는 경제 자립성을 저울질 해 결혼하려니 결혼이 어렵고 독신자가 늘어나고 있다. 빈곤층에서 절대적으로 원하는 것이 생존복지이다. 생존복지를 해야 할 인구가 날로 증가되어 국가의 빚이 늘어나면 유럽의 국가파산 위기가 우리나라에도 올 것이다. 국가의 빚이 국민당 1억을 넘으면 국가 도산 위기가 된다. 우리나라도 점점 국가 빚이 늘어가고 있다. 이는 정치인의 잘못인가 국가 가난인가 국민이 일하지 않아서 인가 궁금해진다.


지금 우리가 해법을 찾지 못한다면 미래세대의 멍에를 씌우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형제 난을 치루고 있는 우리나라 대기업, 우리의 가정에도 형제의 난이 없는가. 명절에도 오고 가지 않는 형제가 있다면 분명히 돈 때문에 등을 돌린 것이 틀림없다. 돈보다 더 큰 가치가 형제간의 우애인데 사람들은 돈을 택한다. 가족파탄의 행위자는 죄의 의식이 없고 눈속임, 양심 속임에도 언제나 이기주의적 자기방어로 정당화하고 곧 돌아서면 자기 자식들도 분쟁의 씨앗을 심을 터인데 말이다. 불신의 도를 넘어 패륜아가 생기고 불신의 파고는 일상된 것이 사회범죄나 한탕주의와 무차별범죄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을 무서워하고 있다. 사람들은 사람을 무서워하고 있다.

예로부터 민심은 천심이라고 하니 민심으로 해결이 불가능 한 것이 경제문제이다. 민심이 모자라서 유럽의 위기가 왔는가. 국가 부도의 책임은 정치와 국민의 합작품이다. 내실없는 허영이 과소비이듯이 내 아이에게 최고의 명품만 고집하는 과소비는 미래 가난을 몰고 올 것이다. 좋다는 것은 모두 최고급으로 다하려는 젊은 엄마들, 그 돈으로 미래 행복의 나눔 세상에 동참하면 어떠할까. 명품가방의 중고품까지 수입해 팔고 있는 우리의 소비의식이나 채면의식은 실용주의가 아니며 경제 시민이 아니다. 남의 눈에 돋보이는 것이 아니라 개성이 있고 선택이 있는 멋이 있어야하고 양식이 있고 내면이 있는 품성의 시대가 오고 있다. 진정 우리아이에게 행복의 나무를 심어주는 것은 명품과 호의호식이 아니라 올바른 인성을 가르치는 부모의 역할이다. 품성이란 본성에다 인성을 접목하고 관습과 생활습관 성실성이며 모든 일에 열의 창의 합의 품의를 총화한 사람 됨됨이가 품성이다.

내가 하는 행동하나 말 한마디 생각이나 판단 등이 그대로 이양되며 특히 생활습관과 예의범절과 질서의식은 양심의 잣대로 자라기 때문에 아이들 보는데 부부싸움은 금물인 것이다. 사람 살아가는 세상을 생사고해라 했다.

고해의 바다라고 한 것은 만경창파 파도처럼 일어나고 부서지고 하는 파도의 포말처럼 그침이 없는 영속에 있음이다. 고행의 길을 벗어나 인행 길을 가신 큰 스님의 법문은 진리이요, 가르침이다.
덕행의 삶이란 사람 사는 세상에서 참되게 살아가는 삶이다.

사람이 죽고 난 뒤 무엇이 남을 것이냐! 옛 선비들은 문집을 남기었고 문집속에는 법문에 버금가는 시를 남기었다. 착하고 선한일이 모이고 모여 덕망이 되고 비문이나 문집에 남긴 것이 후세 이르러 덕행의 큰 거울에 비치는 것이다. 사람의 흔적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더욱 빛나는 정신이다. 충절과 충효 충신을 다한 것이 우리의 민족 유산이라면 충효 속에는 덕행의 삶이 녹아 있다. 어느 시대라도 나눔과 봉사 희생과 구제는 인간 사랑이요, 소통이다. 지금 경제 민주화의 본뜻이 상생과 공존에 있으면서 대기업의 부를 풀어내는 나눔을 열어 대기업의 자긍과 지위를 높이고 기업의 윤리로 표현되는 존경의 대상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대기업 사주가 만족하는 일 즐거이 보람되게 더 높이는 품성의 옷을 입히는 것은 애민애족의 홍익인간정신에 발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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