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과 오해, 그리고 범죄예방
편견과 오해, 그리고 범죄예방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06.03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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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렬/진주보호관찰소장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학교폭력, 성폭력, 가정폭력, 불량식품’ 등 ‘4대 악(惡)’ 척결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학교폭력을 당한 청소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 학교폭력 피해자는 전학을 가고 가해자는 학교에 남아 마치 ‘영웅’처럼 위세를 떨치며 또다른 학교폭력을 행한다는 사례 등에 많은 국민이 공분을 하고 있고 범죄자에 대한 엄벌을 주장하는 의견도 부쩍 늘어난 것 같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구성되어 있고 사람의 성격이나 행동도 마찬가지이다. 범죄의 유형으로는 최근 관심을 받고 있는 학교폭력, 성폭행 뿐만 아니라 살인, 강도, 절도, 사기 등 그 수가 적지 않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우리는 일반적으로 ‘전과자’라고 부르며 일반인과 구별하고 있다. 이 때의 구별은 그들을 우리들과 다른 사람으로 경원시하거나 터부시 한다는 의미가 강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곧 ‘전과자’가 되는 것일까?
필자는 법집행 기관인 보호관찰소에서 보호관찰관으로 근무하면서 범죄를 저지른 많은 사람들(법적 용어로는 ‘대상자’)을 만나고 있다.

서울보호관찰소에서 업무를 수행하던 어느 날, 한 소년 보호관찰 대상자와 면담을 하게 되었는데, 그 소년은 “자신은 전과자이고, 학교에서도 전과자라고 한다”는 얘기를 하면서 어두운 얼굴을 한 채 고개를 숙였다. “왜 그렇게 생각하니?” 라고 물으니 ‘보호관찰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보호관찰을 받고 있는 이 소년은 전과자일까?

보호관찰 특히, 보호처분과 관련하여서는 소년 보호관찰 대상자들은 물론 필자가 만나왔던 교사, 사회복지사 등 많은 사람들이 ‘보호처분=전과’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보호관찰을 받고 있는 일반 성인과는 달리 징역 등을 선고받지 않고 법원에서 곧바로 보호처분을 부과받아 보호관찰, 사회봉사명령, 수강명령을 받게 되는 소년의 경우에는 ‘형법’ 제41조에서 규정한 형을 선고받은 것이 아니므로 전과자가 아니고, 그들이 받은 보호처분은 향후 사회생활을 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우리가 비행을 저지른 소년 대상자에게 ‘공부 열심히 하고, 착실하게 생활하라’고 얘기하더라도 이미 스스로를 전과자라고 낙인 찍은 소년에게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보호관찰을 받고 있는 소년을 바라보는 우리가 ‘보호관찰 소년 = 전과자’라는 편견을 갖고 소외시킨다면 그 소년은 점점 더 자신감을 잃어가 결국은 모든 사람들에게 더 큰 피해를 주는 범죄자의 길을 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범죄예방과는 전혀 다른 결과는 범죄를 유발하여 R. Merton이 언급한 ‘사회적 역기능’을 심화시킬 수 있다.
앞서의 소년에게 보호처분의 성격에 대하여 얘기를 해 주니 소년의 얼굴이 환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은 살면서 자신의 장래에 대한 희망이 있어야 한다. 몸이 아픈 환자에게는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이, 범죄나 비행을 저지른 이에게는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이다. 소년 보호관찰 대상자가 비록 비행을 저질러 일정한 처벌을 받아야 하겠지만, 그 역시 우리 미래의 한 구성원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주위에 보호관찰을 받고 있는 소년이 있다면 이런 말을 해 주어 보자.
‘네가 비록 보호관찰을 받고 있지만 아직 전과자는 아니란다. 지나간 과거의 잘못은 뉘우치고, 앞으로 다가올 밝은 미래를 위해 네 꿈을 펼쳐 보렴!’

범죄 예방은 엄정한 범집행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따뜻한 배려가 병행될 때 효과가 발휘된다. 우리들의 작은 관심과 격려 한 마디가 어느 청소년이 희망을 갖고 미래를 밝혀 나가도록,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없애고자 하는 지역 사회의 범죄를 예방하는 지름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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