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멸을 부르는 갑의 횡포와 을의 반란
공멸을 부르는 갑의 횡포와 을의 반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06.11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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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선태/경상대학교 축산학과 교수

요즘 대한민국은 갑을논란이 한참이다. 일전에 ‘라면상무’로 시작해서 남양유업 영업사원의 욕설 사건과 배상면주가 대리점주의 자살이 겹치면서 우리사회에 ‘갑의 횡포’를 비난하는 ‘을의 반란’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급기야 ‘윤창중 사건’을 계기로 정치권에서도 을을 위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공공연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다수에 약한 정치권이 발 빠른 대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은 대기업-영업점 간 불공정거래 근절을 위한 입법을 추진키로 했고, 민주당은 새 지도부 출범을 계기로 ‘을을 위한 정당’이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이에 6월 임시국회에선 이와 관련된 입법이 줄을 이을 전망이다.


그런데 이러한 갑을관계의 문제는 오늘 어제의 일이 아니다. 원래 갑을 관계는 계약서에 명칭이 반복되는 불편을 줄이기 위해 시작된 편리한 인식방법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집주인과 세입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부기관과 민간기업, 국가와 국민 등 모든 관계와 계약에 힘의 불균형과 돈의 불균형이 존재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즉, 수평적 거래관계인 갑을관계가 수직적 종속관계로 변질된 결과, 요즘 우리사회에서는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힘과 권력을 가진 자이고 을은 약자와 억압받는 자처럼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권력과 자본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갑을의 필연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갑을적인 계약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계약사회이며 관계사회이기 때문에 갑과 을이 항상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문제는 갑의 독점적 힘을 바탕으로 하는 횡포이고, 소수의 갑과 다수의 을이 존재하는 구조적 관계에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유교적 권위주의의 동양문화에 익숙한 사회이기 때문에 계약적 평등관계인 서양문화의 국가들보다 불평등한 갑을 문제가 더 심각하게 나타난다.

그렇다고 ‘을의 반란’을 통해 권위적이고 오만한 갑을 제거해서도 안 된다. 갑이 없으면 을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갑은 악이고 을은 선’이라는 이분법적 재단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갑의 횡포’를 막기 위한 ‘을의 반란’이란 다 같이 망하는 공멸만 있을 뿐임을 직시해야 한다. 그러므로 요즘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갑과 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위치를 인정하는 가운데 개선점을 찾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갑을문제는 법을 만든다고 한 순간에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법을 통해 갑과 을의 관계를 하루아침에 뒤엎어 동등한 관계, 또는 역전의 관계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참으로 무모한 일이다. 이 문제는 서슬이 시퍼런 정부의 칼로도 쉽게 다스려지지 않는 아주 복잡하고 미묘한 거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갑을문제가 우리 사회에 오랜 시간동안 고착된 고질적인 문제인 만큼 이의 해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법의 제정도 중요하지만 꾸준한 교육을 통해 가치관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갑과 을에 대한 철학과 문화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다.

더 높은 권력을 추구하고 살아가는 맘몬의 세상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갑의 위치를 지향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권한이 주어지면 그것을 최대한 행사하려 드는 권위의식이 생길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갑의 위치는 을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고의 정착이 필요하다. 아니, 더 나아가 을을 섬기는 위치가 갑이라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또한 을은 갑에게 무조건 굴복해야 하고,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는 의식도 고쳐나가야 한다. 갑과 을은 상생의 관계이지 군림과 복종의 관계가 아니다. 갑이 없으면 을도 없고, 을이 없는 갑도 없다.

우리는 갑과 을이 상생을 통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선진국형 계약사회의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갑의 횡포와 을의 반란은 상생, 공생, 배려, 나눔, 공유, 민주화 같은 개념들로 대체되어야 한다. 구시대적이고 낡은 전통적 갑을 개념은 이제 그만 바뀌어야 한다. 그런 낡은 가치관을 갖고 21세기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을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요즘 우리 사회가 갑을문제로 시끄러운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리 사회가 성숙하여지고 민주화 되어가는 과정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시대착오적인 갑을관계의 문제가 근본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시점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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