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는 공로식물 쪽(藍)·목화·고무 보존이 필요하다
은퇴하는 공로식물 쪽(藍)·목화·고무 보존이 필요하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06.12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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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주/환경부 환경교육홍보단·경남환경연구원장

신라시대부터 백성들은 흰 옷 입기를 좋아 하였고 지금도 세계 각국을 둘러보아도 백의민족이라 부르는 우리나라만큼 흰 옷을 즐겨 입는 민족은 없는 편이다. 신라에서는 오직 궁중의 성골, 진골의 귀족들만 노란 옷, 붉은 옷, 남색 옷을 입도록 허용 됐는데 이것들은 모두 식물에서 뽑아 낸 물감으로 염색했다.

옛날부터 무명이나 명주를 남색으로 물들인 물감을 쪽(藍)이라는 여귀과 식물의 잎을 이용하였다. 쪽은 원산지가 중국이었는데 궁중의 관복제도와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것이다. 벼슬아치 중에서 당하관이 궁중에 들어가려면 쪽으로 물들인 눈부시게 선명한 남색 관복을 입었기 때문에 쪽은 귀중한 물감이었다. 그래서 옛날부터 선명한 남색을 ‘쪽빛’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제는 귀족도 관복도 없어졌으므로 쪽을 재배하는 곳이 드물어 식물표본조차도 얻기 어려운 실정이다.

붉은 물감을 내는 꼭두선이, 연지 만드는 물감의 잇꽃(紅花), 음식물 색소 치자 등 지난날 화려하고 소중하게 이용되었던 이러한 염료식물들은 시대의 상황에 따라 현역에서 차츰 은퇴하고 있다.

명주의 부드러운 촉감, 무명과 모시옷의 경쾌한 촉감 등 천연섬유 역시 우리 생활을 풍요롭게 하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로부터 뽕나무를 가꾸고 누에를 기르며 명주실을 뽑아 비단을 짜는 일이 여성들의 주요한 일과였다.
고분자화학 연구는 드디어 나일론의 합성에 성공하여 생사생산을 함정에 몰아넣고 말았다. 나일론을 합성한 미국의 ‘듀퐁’회사는 그것을 세상에 내 놓을 때 ‘나일론은 석탄과 공기와 물에서 합성된 것으로 거미줄보다 가늘고 강철보다 질기다’고 자랑했다.

문익점 선생이 붓 깍지에 씨를 넣어 중국에서 들여 온 솜을 따는 목화는 솜과 식물 부스러기가 섞여서는 안 되는 작업의 특성상 기계화를 할 수 없는 작업으로 백인 농장주가 흑인 노동자를 200년간이나 거느려 온 이유 중의 하나이다. 이 역시 투자 대비 적은 소출로 다른 농작물로 대체되고 합성섬유의 물결에 밀려 목화는 조용히 자리를 비워 주고 말았다.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고무 제품은 식물에서 뽑아 낸 물질이다. 고무의 이용은 스페인 사람이 멕시코를 탐험하러 가서 원주민들이 고무나무 즙을 모자나 의복에 발라서 방수를 하고 그것을 뭉쳐 공놀이를 하는 것을 보고 배웠다고 한다.

이후 영국 사람이 지우개를, 고무원료에 황을 결합시켜 탄력성은 강해지고 마모성이 약해지는 성질을 미국이 발견하여 타이어를 만들게 되었다. 고무나무의 원산지는 브라질이었다. 영국은 19세기 말 런던의 큐식물원 후커는 현지 영국인 윗캄과 공모하여 브라질에서의 금수품목인 고무씨 7만개를 밀수출했다. 그 후 발아시킨 2000여개의 묘목을 영국 식민지인 실론(스리랑카)에 옮겨 심었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동남아시아의 고무원이 시작된 것이다.
1941년 일본은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고 군대를 말레시아 반도의 남쪽으로 진군시켜 눈 깜짝할 사이에 영국의 해군기지인 싱가포르를 점령하였다. 더 나아가 일본군은 실론, 자바, 수마트라 등지를 공략하였는데 그 목적은 고무 생산지를 손아귀에 넣는 데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경제 봉쇄를 당하여 고무공급이 차단됨에 이에 자극하여 고무합성에 처음으로 성공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초기에 동남아시아의 고무생산지를 일본군에 빼앗긴 미국은 고무합성 연구에 박차를 가하여 ‘합성고무’를 다량 생산하게 되었다.

현재 천연고무 생산이 거의 멈추고 있는 상태에 비해 합성고무 생산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가격, 품질 등 모든 면에서 우수한 합성고무가 천연고무를 쫓아내고 있다. 따라서 동남아시아의 천연 고무원은 합성고무에 밀려서 은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때는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꼭 필요한 식물이 되었다가 용도가 떨어져서 은퇴하는 식물이라도 그것이 탄생하기까지는 수천만, 수억 년이 걸렸을 것이다. 식물의 쓸모 있는 성분이 화학적으로 합성되고 화학제품으로 대체될지라도 은퇴식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유전자는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다. 그래서 은퇴하는 식물의 그 종은 잘 보존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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