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종교사상(宗敎思想)(Ⅲ)
중국의 종교사상(宗敎思想)(Ⅲ)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06.16 15: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신웅/한국국제대학교 국제한국어교원학과 교수

 
제(帝)는 상신(上神) 혹은 상제(上帝)로 불리는데, 그 공능으로 보아 초자연적인 신령의 힘을 통합하여 자연과 인간 양계를 주재한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상제에게는 비를 내리고(令雨), 해를 부여하고(授年), 도움을 내리고(授祐), 길상을 주고(降若), 복록을 내리고(降福), 한재를 주고, 재해를 주고(降災), 인간계 속의 마해를 주는 등의 여덟 가지 공능을 가졌다고 절대 숭배했던 것이다.

상제에 대한 숭배가 은대에 성행했다면 천(天)에 대한 숭배는 일·월·성 ·신 ·산·천·풍·우 등의 자연현상에 대한 의식과 제사를 기록한 복사의 연대인 서주(西周)부터 현저해졌다. 주(周)대는 천에 대한 경외 관념이 심한 반면, 이성(理性)의 출현으로 천을 종교적인 관점만으로 다룬 것이 아니라 철학적인 관점으로 다루게 된 중요한 교량적인 시기였다. 예를 들자면 ‘논어(論語)’에서 천을 ‘오수기(五誰欺)’, ‘기천호(欺天乎)’, ‘사생유천(死生有天)’, ‘부귀재천(富貴在天)’, ‘외천명(畏天命)’, ‘천상여(天喪予)’ 등과 같이 경외하였지만 ‘획죄어천(獲罪於天)’, ‘무소도의(無所禱矣)’, ‘자불어괴력난신(子不語怪力亂神)’ 등에서는 냉철한 이성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맹자(孟子)’에 있어서도 ‘천여지(天與之)’, ‘천수지(天受之)’, ‘차천지소여아자(此天之所與我者)’, ‘순천자존(順天者存)’, ‘역천자망(逆天者亡)’ 등의 외천, 혹은 순천(順天)·경천(敬天)사상은 두드러졌고, ‘경(詩經)’이나 ‘상서(尙書)’ 중에 천을 상신(上神)으로 삼은 기록은 336군데나 되었다. 아무튼 제와 천이 숭배받던 조대는 다르지만 제나 천이 다 같이 지상(至上)의 신으로 최고의 주재자를 뜻하였다. 인간들이 기왕 천을 그토록 경외했다면 천과의 교통과 천과의 접근의 방법으로 제사를 택한 것이다.

태산(泰山)에 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는 하은(夏殷) 시대의 봉선(封禪)은 사천(祀天)의 기원이 되겠고, 겨울에는 남교(南郊)에서, 여름에는 북교(北郊)에서 천자(天子)에 의해 주제(主祭)된 교사(郊社)의 제사는 봉선을 한층 의식화했으니 공자의 하우(夏禹)에 대한 찬미에서도 그 주제자의 엄숙을 엿볼 수 있다. 더구나 주공(周公)의 예악(禮樂)에 대한 제작과 ‘시경’ 대아생민(大雅生民)편에 서술된 사천의 육중한 예절에서 그 경건한 풍조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이성의 출현으로 경천의 관념이 동요당하기 시작한 동주(東周)부터는 천의 절대적인 지위를 회의했다. 전쟁과 천재 속에 하늘의 인색함과 불공평을 저주한 것들을 ‘시경’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 여기서 인간과 신의 거리는 단축되었다. 정신적으로 천인(天人)이 접근되는 외에 주대는 인위적인 환경과 여건 아래 점점 조상에 대한 제사가 보편화되었다.

주공(周公)의 새로운 예악의 제정과 조상을 통해 상제에게 제사지내는, 즉 상제와 인간 사이의 매개적 역할을 담당한 조상의 제사는 원시종교를 전화시키는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 따라서 종법(宗法)을 중시한 주대인지라 씨족별로 조상에게 제사하는 것은 모든 경배(敬拜)사상을 대치했고, 종교생활의 핵심을 이룩했던 것이다. 당시 제사에 있어 본질적인 관념은 죽음을 삶으로 보고 죽은 사람을 산 사람으로 보는 ‘사사여사생(事死如事生)’에 있었다. 즉 영혼불후론(靈魂不朽論)을 신봉한 것이다. 그래서 은대부터 이미 후장(厚葬)의 습관이 전래케 된 것이니 모든 길흉화복의 주재는 조상에 달렸다고 믿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조(祀祖)의 풍조를 더욱 강렬케 한 것은 먼저 자기의 조상을 모실 수 있게 직계 친족군들과의 유대와 결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제사의 의의를 근본에게 보답하고 역사의 시초에 환원된다는 데에 두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