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 의견이 철저히 무시되는 사회
소수의 의견이 철저히 무시되는 사회
  • 정동수 지역기자
  • 승인 2013.06.25 14: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민주국가에서 가장 합리적인 제도를 하나 꼽는다면 다수결제도일 것이다. 주장하는 내용이 목적에는 부합하지만 절차상 내지 방법상 차이가 있을 때 소속된 구성원들은 다수결로 하나를 결정하는 조금은 합리적인 제도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나머지 소수의 의견에 대한 평가와 수용범위이다. 왜냐하면 그 소수도 그 조직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즉 적용과 운용에서 결과의 집행자는 소수의 의도를 반영하려 한다. 이것이 합리적 다수결의 모습이다.

우리는 오랜 세월동안 유지되는 단체나 조직들을 주위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거기에는 나름의 특이한 수단이 동원되기도 하지만 대개는 합리적인 다수결 내지 구성원 전원의 동의를 득해야만 어떤 사안을 처리하거나 집행하도록 함으로써 조직의 와해나 혼란을 사전에 차단한다.

어떤 조직이나 단체가 와해되는 원인들을 찾아보면 보통 아주 작은 원인에 기인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 만큼 소수의 역할과 존재감은 사안과 시대상황에 따라 클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국가를 이루는 요소에는 많은 것이 있기 마련이다. 딱히 한 가지만의 사안으로 반대의 위치에 있는 자들을 멸시하고 무시한다면 또 다른 여러 갈래의 일에서는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할까? 참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국가와 사회의 존재 형태를 힘 있는 한 개인이나 그를 따르는 다수의 힘으로 소수를 누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신라의 화백제도는 신라의 삼국통일을 가능하게 한 힘의 원천이라 생각된다. 모든 계층의 의견을 담아내고 대변해 모든 이가 소속감을 느끼게 한 운용에서의 완결을 기한 제도였기에 작은 힘으로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숫자로 누르지 않고 충분한 토론과 양보로써 모든 구성원이 만족하는 하나의 의견을 만들어 내는 너무도 합리적인 다수결이 지금은 절실히 필요한 때라 보인다. 작금의 현실을 보면 걱정을 넘어 위기의식을 느낄 정도로 사회 전체가 엉망이 되어 가고 있다.

군중심리로 모든 사회 여론을 조작해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권력의 중심부에 있는 사람들, 언론도 여기에 발맞춰 보조 맞추는 보도, 본질적인 역할을 망각한 채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다수결과 힘의 시류에 너무도 쉽게 편승해 가는 사회 구석구석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이 나라가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 한숨밖에 나오질 않는다.

국가나 단체가 발전을 원한다면 적당한 대립과 경쟁도 필요할 것이다. 모든 이가 순응하고 굽신거린다면 발전은커녕 내부적으로 썩어 문드러질 것이다. 자연의 이치상 자연을 구성하는 모든 사물은 적당히 움직이고 소리를 내어야만 도태하지 않고 성장할 것이다. 너무도 당연하고 근본인 자연의 법칙도 거스른 채 지금의 모습들로 계속 굴러 간다면 우리의 앞날은 상상하지 않아도 확연히 보인다.

우리는 지금까지 과거에 실로 엄청난 일들을 경험하면서 살아왔다. 소수의 의견이 철저히 배제되는 사회의 여러 제도와 법칙들, 또한 그것들을 해석하는 다수를 움직이는 소수의 주체들은 과연 언제까지 지금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까? 보다 더 먼 거리까지 함께 가기를 원한다면 변화를 줘야 할 것이다. 최소한의 것만이라도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