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가 깨끗해야 한다
뒤가 깨끗해야 한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5.30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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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효빈/시인
몇 해 전에 모 일간지에서 보았던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작품이 생각났다. 작품을 본 지 오래여서 전문이 생생히 기억나지 않으나 요약을 해보면 ‘설거지를 할 때 그릇은 뒤를 잘 닦아야 한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들며 인간사를 꼬집은 내용의 시다. 그래그래, 맞아! 라며 공감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설거지를 하다보면 앞부분은 여러 번 닦고 헹구어 반들반들하나 뒤집어보면 여전히 씻기지 않은 거품이 있다. 미끄러움도 앞면보다는 뒷면이 더해 자칫 놓쳐 깨뜨리기도 한다. 음식물 찌꺼기가 덜 닦여 얼룩이 남아 있는 적도 있다. 크든 작든 그릇은 뒷부분을 더 잘 닦아야 한다는 평범하지만 큰 교훈이다.

늘 경험하는 일상을 놓치지 않고 훌륭한 작품으로 상상해낸 시인의 능력에 찬탄했었다. 이런 오래된 기억이 떠올려지는 건 최근 TV뉴스를 접할 때마다 들리는 ‘부산저축은행 비리사건’ 때문이다. 자고 일어나면 속속들이 드러나는 새로운 비리들에 혀를 내두르며 바로 ‘뒤’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말에 뒤가 구리다, 뒤가 꿀리다, 뒤가 무겁다, 뒤가 저리다, 뒤를 노리다, 뒤를 사리다  등의 표현과, 누구나 결점을 찾으려고 하면 허물이 없는 사람이 없다는 ‘뒤를 캐면 삼거웃이 안 나오는 집안이 없다’는 속담처럼 뒤와 관련된 건 매우 부정적인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그 외에도 ‘뒤’를 말하는 것은 대체적으로 나쁜 의미로 쓰인다.

그나마, 뒤에 생긴 것이나 나중에 배우기 시작한 사람이 앞의 것이나 사람보다 훨씬 훌륭한 경우를 비유적으로 든 속담으로 ‘뒤에 난 뿔이 우뚝하다’라는 괜찮은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게 다행이었다. 그간 부산저축은행도 이자율 높은 서민들을 위한 금융기관이라는 착한 모습으로 버텨오지 않았는가.

없는 사람들의 살과 피 같은 돈을 제 돈인 양 서로 갉아 먹는 행위를 할 때 그들의 뒤는 차곡차곡 부로 쌓였지만 지금의 뒤는 법적 처벌이다. 그렇다면 없는 사람들의 뒤는 어떤가. 비리의 굴속에 전 재산을 밀어 넣었으니 그 때나 지금이나 서민들의 뒤는 없다. 차곡차곡 저축을 하면서 든든하다 믿었던 뒤가 허무하게 날아가 버린 것이다. 

서민들의 뒤 없기로는 가진 것 없는 것이나 매한가지다. 그럼에도 정작 이 나라의 뒤를 봐주는 건 바로 이들의 힘이다. 이 나라의 진짜 든든한 힘과 배후는 잘나가는 상위 몇%가 아닌 과거나 현재나 또한 미래에도 가장 낮은 뒤에서 땀과 눈물로 묵묵히 있을 민초들이다.

날마다 펼쳐지는 저 지저분한 뒤를 누가 어떻게 닦을 것인가. 제대로 닦아져 상처투성이의 서민들을 치유할 수는 있을 것인가. 앞과 뒤가 모두 깨끗해지기를 바라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조금 더디더라도 상처가 아물고 새 살이 돋는 걸 보고 싶다. 뒤를 잘 닦아 본 사람만이 투명한 배후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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