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주법의 이면
미국 금주법의 이면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06.26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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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진/수필문우회 회장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시대적 배경은 1922년 여름으로 미국에 금주법이 시행되고 있을 때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 개츠비는 매 주말마다 뉴욕 근교 롱 아일랜드 강변에 있는 자신의 대저택에 많은 사람들을 초청해서 성대한 파티를 베풀고, 손님들에게 샴페인을 비롯한 각종 주류들을 흥청망청 제공한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은 자기를 초대해서 즐겁게 해주는 젊은 벼락부자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여자들은 서로 수군거린다,

“그 사람 밀주업자래요” “사람을 죽인 적도 있대요. 어떤 사람한테 자기가 힌덴부루크의 조카이자 악마의 6촌이라는 것이 들통나자 그 사람을 죽여버렸다는 거예요” (김석희 번역 ‘열림원’판에서 인용)
마치 개츠비가 독일계 이민자 자손인 것처럼 생각하고, 밀주로 돈을 버는 사람으로 단정을 한다. 그렇다면 이런 편견은 어디서 온 것일까?

미국의 금주법은 오랜 산고(産苦)를 거쳐 1920년부터 시행되었다. 소비를 위한 알코올의 제조, 판매, 수송을 전면적으로 금지한 법이다.
이러한 금주법 성립은 지상에 천년왕국을 실현하려는 ‘고귀한 실험’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그리 떳떳하지 못한 이면을 감추고 있다.

1871년부터 1885년 사이에는 150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동부도시에 정착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중서부 지방에 정착하여 그들 특유의 근면성과 성실성으로 농경사업에서도 크게 성공했다. 특히 그들은 자기들의 생활문화를 가져와 지키고 즐겼다. “한 평생 와인과 마누라와 노래를 즐기지 않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다”하고 그들의 가치관을 자랑스럽게 토로했다. 독일인의 사교생활에서 노천맥주집과 맥주축제는 빼놓을 수가 없고, 정기적인 음악회도 필수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스타인웨이 피아노 제작회사를 만들고, 맛 좋은 맥주공장을 소규모로 여러 곳에 세워 크게 번창했다.

20세기에 들어서자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1914년에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 미국이 중립을 지킬 때 미 언론이 일방적으로 독일을 비판하자 미국 내 독일계 국민들은 그것을 바로 잡는 것이 그들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활동했다. 그것이 반독일주의자들, 특히 동부지역 WASP(백인 앵글로색슨 신교도)들을 자극했다. 1917년 미국은 참전을 했고, 그동안 독일식 이름의 마을과 거리는 이름을 바꾸어야 했다. 보스턴 시는 베토벤 음악의 연주를 금지시켰다.

반금주법의 중요세력이었던 유능한 독일계 인사들이 침묵하는 가운데 같은 해, 12월 미국 상원은 금주법을 위한 헌법 수정 제18조를 제출했고 1919년 각 주의 비준이 완료되어 수정 조항이 성립되었다. 1920년부터 시행된 금주법은 1929년 대공황을 겪으며 이름만 살아 있다가 1933년에 폐지되었다. 이 법 때문에 독일계 미국인들이 맛본 좌절감은 재산상의 손실 이상으로 그들의 정신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전체 국민들도 잃은 것이 많았다. 맛 좋은 포도주와 맥주를 마시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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