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의 시간
알파의 시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5.30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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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영/지리산국립공원

사무소 행정과

어릴적,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집에 연락도 하지 않고 캄캄해진 뒤에야 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 때문에 난생 처음 아버지께 회초리를 맞고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후에도 제법 머리가 굵어질 때까지 매서운 꾸중이나 매를 더러 맞았던 것 같다. 그 때마다 나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서운함으로 밤잠을 설쳤던것 같다. 지금은 모두 내다버렸지만, 당시의 일기장에 내 삐뚤어진 마음이 그대로 적혀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꾸중과 회초리만 해 주신 게 아니었다. 군대에 가 있던 아들에게 꼬깃한 광고지 뒷면에 휘갈 겨 쓴 편지를 보내기도 했었다. 그 편지를 받고 누가 볼세라 숨겨두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던 기억이 난다.

야속한 아버지, 고지식하며 화를 잘 내서 많이도 미워했던 아버지였지만, 지금 그 당시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가슴 한 켠이 아릿해진다. 왜 그때는 몰랐을까, 아버지의 회초리와 편지의 의미를.

하성란 작가는 소설 ‘알파의 시간’에서, 과거의 어떠한 경험이나 사건들은 플러스 알파(+α) 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그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음을 말한다.

소설은 여주인공이 20여년 전 가출한 아버지가 그렸음직한 야립간판과 마주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주인공과 가족들은 그 동안 아버지로 인하여 힘든 나날들을 겪었지만, 막상 간판 앞에 서서 주인공이 회상하는 과거는 이전처럼 비루하고 고통으로 점철된 게 아닌, 그저 아름다운 사춘기의 성장담으로 바뀐다. 그리고 야립간판의 그림 속 여자아이는 주인공을 그린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에게는 자신과 꼭 닮은 모습처럼 보이게 된다. 과거를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고통은 승화되어 추억이 됨을 작가는 넌지시 일러주는 것이다.

이처럼 지나온 시간과 경험이 각자의 플러스 알파 만큼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로 다가왔던 것을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 봤을 것이다.  병명 모를 스트레스성 질환으로 한달간 병원 신세를 졌던 군생활, 낯선 환경에 적응하며 많은 것을 배웠기에 아직도 군대 말투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10개월간 최저임금 받으며 인쇄물 복사만 하던 서러운 인턴생활이었지만 정규직으로 임용된 지금은 그간 어깨너머로 보고들은 것이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나는 확신한다. 지금 이 순간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플러스 알파’의 시간이 흐른 뒤에는 분명 아름다운 추억으로 변해 있을 것임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르고 그저 앞만 보고 달리고 있지만, 알파의 시간이 지난 뒤에 돌아보면 분명 큰 성취를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으리라. 그러니, 시간이 지나면 아픈 상처에 절로 부드러운 새살이 돋아날 것임을 당신도 믿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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