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의 바다에 빠지다
영어의 바다에 빠지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07.11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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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인숙/진주보건대학교 관광계열 교수

우리 대학은 여름방학만 되면 학기 중보다 더 바쁘고 학생들로 붐빈다. 4년 전부터 방학을 이용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데, 그 중 규모나 기간 그리고 성과 면에서 단연 으뜸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영어몰입 프로그램’이다.

참가인원은 영국에서 초빙된 대학생 40명과 우리 재학생 200명이다. 영국 학생 1명에 한국 학생 5명의 그룹으로 구성되며, 영어회화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저녁 식사 전까지 정규 학습을 진행한다. 이 프로그램은 합숙형으로서 야간 자율학습까지 포함하여 하루 11시간 동안 영어 공부하는 스파르타식 교육이다. 말이 쉽지 11시간이면 잠자고 식사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의 대부분을 영어 공부를 하는 데 보낸다.

우리 학생들에게 이런 프로그램을 대학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이유는 바로 영어의 사회적인 필요성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영어 학습이 시작되지만 외국인과의 대화도 원활하지 못하다 보니 취업 영어 인터뷰나 토익시험으로 질 높은 취업에 어려움이 있다. 우리 대학 재학생들의 취업 준비능력을 높여야 소위 명품취업을 시킬 수 있기 때문에 여름방학 두 달을 온전히 영어회화와 토익을 준비하는 프로그램으로 진행하게 된 것이다.

외국어를 익히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노출 시간은 대략 11,680시간이라고들 한다. 하루에 세 시간씩 외국어를 학습한다고 할 때 10년 가까이 걸려야 되는 시간이다. 이는 보통 어떤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는 데 필요한 시간이기도 하다.

우리가 영어의 필요성 및 중요성을 많이 부각시키고 교과과정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만 그 만큼 성과가 떨어지는 것은 바로 ‘노출과 활용’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외국어는 학과목으로 외워서 습득되기 보다는 몸으로 체득되는 기술과 같은 것이다. 가령 수영을 책으로 배운다면 막상 물속에서 손발을 이용하여 앞으로 나가는 것이 쉽겠는가. 또한 운전을 교재로만 공부했다면 차가 다니는 거리에서의 운전은 채 10미터를 가기도 힘들 것이다. 그러나 수영이나 운전은 노출과 활용으로 자연스럽게 체득되고 그렇게 익힌 기술은 한동안 사용하지 않아도 몸에 배어있기 때문에 그 상황에 처하게 되면 다시 사용가능하다.

외국어 능력도 이와 같아서 상황 속에서 실수와 반복사용을 통해 스스로 연마되는 것이다. 6월 말 영어캠프를 시작했을 때 우리 학생들은 자기 소개하는 것조차 버거웠지만, 2주가 지난 지금 엄청난 발전이 보인다. 공부하는 시간뿐 아니라 세 끼 식사도 함께 하면서 완벽한 문장은 아니어도 영어로 표현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일단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즉 노출이 되면서 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다. 외국어는 일단 심리적 부담이 적어야 자유롭게 의사 표현이 가능하다.

오래 전 미국 유학시절 대학원 수업만으로는 부족했던 영어회화 능력이 캠퍼스 밖에 나가 일을 하면서 좋아졌던 기억이 있다. 교내에서 사용되는 대화내용은 한정적이지만, 교외에서는 일상적인 내용 뿐 아니라 다양한 대화 상황들이 회화능력을 기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려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토막단어라도 편안하게 사용하면서 노출이 이루어지다 보니 설사 틀린 표현을 써도 개의치 않게 되었다. 좀 틀리면 어떤가. 우리말도 아닌 외국어를 그 만큼 하면 되는 것이지. 이런 배짱은 편안한 노출과 활용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 더운 여름방학동안 학생들은 영어의 바다에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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