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교(道敎)의 구선(求仙)과 자연주의 사상(Ⅱ)
도교(道敎)의 구선(求仙)과 자연주의 사상(Ⅱ)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07.1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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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웅/한국국제대학교 국제한국어교원학과 교수

도교사 그 방술(方術)의 방식이나 경적의 출판 등으로 가장 활발했던 위진 남북조(魏晉南北朝)에는 위백양(魏伯陽)과 갈홍(葛洪)을 중심으로 한 단정파(丹鼎派)와 도굉경(陶宏景)과 구겸지(寇謙之)를 중심으로 한 부록파로 분열되었다. 위백양의 ‘삼동계(參同契)’와 갈홍의 ‘포박자(抱朴子)’ 등 두 저작을 중심한 단정파는 호흡을 통해 내재적인 정(精)·기(氣) ·신(神)을 보존한다는 내단술(內丹術)과 유석수은(硫石水銀) 등 약물로 연제한 금단(金丹)을 복용함으로써 신선이 된다는 외단술(外丹術)을 동원하여 인간의 본성을 배양한 채 모든 질병을 제거하고 천년 장수함을 기구하고 있다.

한편 장능(張陵)에게서 창시되어 도(陶)·구(寇) 양씨에 의해 대성된 부록파는 부록의 이용으로 치병(治病)·소재(消災)·피사(避邪)를 한다는 주장으로 일관된바 도씨의 도인벽곡방법과 구씨의 천사도(天師道) 제창이 그 방법의 일환이다. 단정파가 어느 정도 과학적인 양생방법이라면 부록파는 미신의 남상이 되었었다. 요·금(遼金)대에는 다시 수성(修性)을 주장하는 남종(南宗)파와 주연(酒煙)을 금절하고 출가하여 수명(修命)을 주장하는 북종(北宗)파로 나눠졌다. 그 중 북종파는 전진교(全眞敎)로 발전하여 원대(元代)에 성행했다.

전진교의 흥기로 도교가 보급되자 상대적인 교리를 들고 나온 장천사(張天師) 일파의 정일교(正一敎)는 집에서 처자를 거느리고 주육(酒肉)을 먹는 참여적 경향을 띄기도 했거니와 사천(四川)을 중심으로 남방에 유행한 금단교(金丹敎)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다.

한편 송(宋)대에도 ‘도장(道藏)’을 간행했고 명(明)대에는 5500책이나 되는 ‘정통만력(正統萬曆)’ 등 두 가지 도장을 간행하기도 하여 문헌으로 볼 때 중요한 종교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

청대에는 그 초기에 많은 도교의 지파가 난립했지만, 중요한 교세로는 도광(道光)간에 서강심오에서 요제빙(廖帝聘)이 창립한 진공교(眞空敎)를 들 수 있다. 그들은 경배의 의식을 가지면서도 우상을 반대했고 치병(治病)을 전도의 방법으로 쓰자 강서(江西)·복건(福建)·광동(廣東) 등지에서 성행했다. 비록 청조의 경시 때문에 정통의 도교는 쇠락되었지만 오늘날도 중국의 남방 및 해남도(海南島)와 대만(臺灣)등지에는 옥황(玉皇)이나 노자를 모시는 절은 아직도 많은 민간을 그 믿음 안에 끌어들이고 있다.

그들이 경배하는 신은 세계 어느 종교보다 복잡하다. 천신(天神)·인귀(人鬼)·지지(地祗)·선인(仙人) 등으로 분류되는데, 그들은 방술(方術)을 운용하는 데 중점을 두었지 신에 대한 진실한 추구에 중점을 두진 않았다. 천신은 원시천존(元始天尊), 인귀는 태상로군(太上老君), 지지는 풍도북음대제, 선인은 적송자(赤松子) 같은 것이거늘 그 중 최고의 존경을 받은 조사(祖師)는 노자로서 지존무상(至尊無上)의, 신변무방(神變無方)의 신인(神人)으로 군림하고 있다. 다만 노자는 순수한 하나의 철인이었는데 위진(魏晉) 이후 순수한 철학으로 발전을 못하고 민간 미신으로 전락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인 것이다. 노자 외에도 신선 인물로는 귀곡(鬼谷)·왕자교(王子喬)·적송(赤松)·백이(伯夷)·숙제(叔薺)·공자·안자·장자·묵자·굴원(屈原)·손권(孫權)·왕필(王弼)·주공단(周公旦) 등이 등장되었었다.

한편 도교는 불로장생을 위한 방술이나 미신에만 급급할 뿐 아니라 민속과 민덕을 선양하기 위한 권선(勸善)도 하여 오계(五戒)와 십선(十善)을 주창하기도 했다. 5계는 살생(殺生)과 음주·기만·절도·간음을 삼감이요, 10선은 효·충·자(慈)·관용·간쟁(諫諍)·희생·방생(放生)·식수(植樹)·이타(利他)·공양(供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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