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해야 할 것들
내 생애 해야 할 것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5.30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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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효빈/시인
이메일을 열자 ‘내 생애 꼭 들어야 할 올드 팝’이란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내용을 보니 제목대로 꼭 들어야 할 것들이 아닌, 막 출시된 가요음반에서 최신 팝까지 한마디로 종합 광고판이었다.

위와 비슷한 제목의 상품과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서점에 가보면 신간도서와 인기도서 코너에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이란 제목의 책들이 많다. 여행에서 음식, 도서, 와인, 오페라, 영화, 세계사 등, 문득, 옷은 왜 없을까 하는 생각이 슬몃 들었다. 여성 의류에 ‘죽기 전에 꼭 입어야 할 ○○ 디자이너의 옷’으로 마케팅을 한다면 매출은 기대 이상일 것이란 생각은 필자만의 것인가.

그 많은 꼭 해야 할 것들 중 여행을 들어보자. 세계 곳곳마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만큼 많은 여행지로 개발돼 있다. 지구가 촌이 된지 오래니 말이다. 해외여행이 보편화돼 각지로 여행을 떠나지만 평생 얼마나 갈 수 있을 것인가.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따라줘야 하니 제 아무리 지구촌이라 한들 갈 수 있는 곳은 한계가 있다. 또한, 어렵사리 가는 여행이니 장소 선택에 많은 고민이 따른다.

그런 고민의 해결서로, 혹은 간접 여행으로 위안삼은 이들을 위해서나, 떠나는 이들의 더 많은 자유와 즐거움을 위해 여행 도서들은 계속 출판되고 꾸준한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거기에 ‘죽기 전에’라는 대전제가 따르면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힘은 배가 된다.

몇 해 전 필자가 소매물도를 다녀온 것 역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섬’이란 책을 보고 나서다. 소매물도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보다도 죽기 전 한 가지를 해냈다는 묘한 성취감에 젖은 기억이 떠오른다.
보다 강렬한 비장함으로 오는 제목이 있다. ‘죽기 전에 꼭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들’,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몇 가지’등이다. 그 책들이 제시하는 것을 하지 않으면 정말 후회하면서 비통하게 죽어가거나 편히 죽지 못할 것이라는 정체불명의 강박이 들기도 한다.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제목 붙이기는 바로 이런 심리를 이용한 기업들의 상업적 전략이다. 더러는 그런 제목에 끌려 골랐다가 ‘내 생애 잘못 고른 물건 목록’에 올려야 할 것들도 있다.

누군가가 말하는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혹은 봐야 할 것’도 중요하지만 저마다 각자의 것들을 정리해 보면 어떨까. 우리는 해야 할 것들이 많다. 이미 많이 살아 왔든 아직 좀 덜 살았든 해야 할 것들은 참 많다. 시간의 차가 있을 뿐 해야 한다는 것은 같다.

이미 누군가의 생각으로 정리되어진 것 말고도 각자가 해내야 할 것들, 누려야 할 것들이 여전히 많다. 죽은 후 썩 괜찮은 내세가 있다할지라도 우선 이 생애에 해보자. 여행도, 음식도, 영혼을 맑게 할 아름다운 시 한 구절과 음악, 이 모두 살아있을 때 조금 더 즐기고 볼일이다. 산자의 슬픔이 아닌 산자의 기쁨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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