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엔, 얼른 커피 맛을 아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엄마를 졸라 티스푼으로 딱 한입 얻어먹고 아쉬운 표정을 한껏 지어 봐도, ‘어린이’에겐 더 이상 허락되지 않는 어른 경험. 궁금한 게, 새로운 게 너무나 많았던 그런 날들이 있었다.
등굣길에 매일같이 마주치던 남자애를 보면서 ‘설렘’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나보다 못생긴 우리 반 여자애가 그 애의 여자 친구임을 알고는 ‘실연의 아픔’도 겪었다. 인생에 첫사랑보다 더 슬픈 것은 없을 것만 같던 시절.
‘in서울!’ 따위의 문구와 영단어 따위가 적힌 메모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독서실 책상 한 칸을 차지하고 앉아, 졸음을 쫓으려 노란색 커피믹스를 타 마셨다. 인생에 공부보다 더 힘든 일은 없을 것만 같던 시절.
모처럼 교복을 벗고, 어색한 화장을 하고 시내로 놀러 나가는 날이면, 커피전문점에서 ‘카라멜 마끼아또’를 주문할 줄 아는 세련된 여자애가 되어야 했다. 어른 흉내가 마냥 재미있던 그 무렵, 돌이켜보면 인생은 꼭 휘핑크림을 잔뜩 얹은 카라멜 마끼아또만큼 달달했다.
‘사글세 내고 돈 없을 때 밥 대신에 마시는 아메리카노’가 어떤 맛인지도 안다. 10cm가 왜 “시럽 시럽 시럽, 빼고 주세요.”를 외쳤는지도. 그 아메리카노는 딱, 청춘이라는 시절의 무게만큼 진하고 써야만 했다.
중후한 멋을 즐길 줄 아는 나이가 되면 꼭 에스프레소 머신을 집에 들이고 싶었다. 매일 아침을 진한 에스프레소와 함께 맞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어른의 모습이길 바랬다. 고가의 머신을 살 수 있는 경제력이 생긴 만큼, 내 책임감도 무거워질까. 에스프레소만큼이나 진하고 쓴 인생의 맛이 머신을 타고 함께 내려올까. 그 막중한 것들은 과연 그 조그만 에스프레소 잔에 다 담기기나 할까.
모퉁이를 돌면 커피전문점이 있었다. 9개의 스탬프가 찍힐 동안 안면을 튼 주인이 언젠가부터 “오셨네요.” 라는 인사를 건네는 곳이었다. ‘시럽 넣을까요.’ ‘시나몬 가루 뿌려 드릴까요.’ 친절하게 물어오던 주인은 이제 묻지 않고도 내 취향의 커피를 만들어 줄 터였다.
발길을 돌려 편의점으로 갔다. 적당히 달고, 적당히 부드럽고, 적당히 싼 커피가 당겼다. 진한 T.O.P를 지나쳐, ‘그냥 커피’를 하나 집었다. 충분히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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