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랑자르뜨 섬의 일요일 오후
그랑자르뜨 섬의 일요일 오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5.30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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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순/부산 경성대 외래교수

몇 해 전부터 소녀는 한 장의 그림엽서를 늘 품속에 지니고 다닙니다. 마치 어릴 적 소녀의 어머니가 그녀를 염려하여 만들어 준 부적처럼, 혹시나 잃어버리지나 않았나 하는 마음에 부적을 넣어 둔 곳을 수시로 확인하며 안도해하던 그 때 마냥, 소녀는 그 그림엽서를 보고 또 봅니다. 소녀가 지니고 다니는 그림엽서의 뒷면엔 ‘Georges-Pierre Seurat, A Sunday Afternoon on The Island of La Grande Jatte, 1884, Oil on canvas’ 라고 쓰여 있습니다. 소녀는 왜 그 오랜 시간 동안 이 그림엽서에 집착하고 있는 것일까요.


몇 해 전 어느 날 소녀는 그녀의 곁을 늘 함께하는 소년에게 이 그림엽서를 선물 받았습니다. 그날 소년은 소녀에게 “이 그림이 무얼 말하고 있는 줄 아니 그리고 네가 이 그림으로 춤을 만든다면 어떻게 만들 것 같아” 라는 질문과 함께 이 그림엽서를 선물했었습니다. 소녀는 그날 이후 이 그림이 무얼 말하는지 그리고 이 그림으로 어떻게 춤을 만들 수 있는지를 소년에게 답하기 위해 매일매일 보고 또 보았습니다. 어느 날 소녀는 소년에게 줄 답을 찾은 듯 했습니다. 그래서 소년에게 말했습니다. “이 그림의 화풍을 후기인상주의라고 해! 그리고 점묘법이라고 하는 테크닉을 사용하여 쇠라가 그린 그림이지! 그러니까 나는 화가 쇠라가 주인공이 되어 인상주의에 심취하고 점묘법을 개척해 그림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을 춤으로 만들겠어!” 소녀의 대답을 들은 소년은 시무룩해 졌습니다. “어! 뭐지 저 표정은 그럼 뭐 다른 게 또 있나”

얼마 후 소녀는 소년에게 다시 말했습니다. “이 그림 속의 인물들은 부르주아들이니까 그림속의 인물들을 꺼내 부르주아의 삶을 풀어보면 어떨까” 소녀의 대답을 들은 소년은 어깨를 축 늘어뜨렸습니다. “아이 짜증나! 알면 가르쳐 주던가! 자기도 뭐가 뭔지 모르면서!” 소녀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말했습니다. “쇠라가 이 그림을 전시할 때 함께 전시하려던 다른 그림도 있었어! 그 그림은 이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살고 있는 반대쪽의 사람들, 즉 프롤레타리아들이야! 그러니까 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삶을 대조적으로 풀어 춤을 만들어 보겠어! 아마 하늘나라에서 쇠라도 좋아할 거야” 소녀의 대답을 들은 소년은 한숨을 쉬었습니다. “저 애는 왜 항상 내 말은 다 틀렸다는 표정일까. 내가 이 그림 때문에 얼마나 공부를 많이 했는데... 내가 너무 많은 걸 알아가니까 분명 샘이 나서 저러는 걸 거야, 흥!”

얼마 후 소녀는 다시 대답했습니다. “점도 중요하고 빛도 중요하고 선도 중요하지만 움직임이 더 중요해! 언제 부터인가 저 그림이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리고 그림 속 인물들의 당시의 삶도 중요하기는 하지. 하지만, 어쩐지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삶은 그다지 변하지 않은 것 같아! 마치 저 속의 인물들이 그 이전의 과거부터 현재 까지 지속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고, ‘차이’는 있지만 ‘반복’되는 것처럼 말이야! 누군가 날아가는 ‘화살은 정지해 있다’고 말했다지 왠지 요즘 들어 그 말이 정말이지 틀린 것 같아! 왜냐면 말이야, 이 그림을 계속보고 있으니 정지해 있는 이 그림조차도 계속 움직이고 있는 게 느껴지거든! 게다가 볼 때 마다 나에게 다른 말을 걸어오기까지 해! 아마 내일이면 또 다른 움직임과 말로 내 곁을 떠돌겠지! 마치 ‘유령’처럼...”

그제야 소년은 소녀에게 화답의 미소를 보내며, 한 마디 거듭니다. “‘날아가는 화살은 정지해 있다’는 말도 있지만, ‘같은 강물에는 결코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말도 있어. 어느 쪽일까 같이 한 번 더 생각해 보자.”그 말을 듣고 소녀는 한 번 더 그랑자르뜨 섬의 일요일 오후 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내일은 얘가 무슨 이야기를 해 줄까’ 궁금해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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