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고 구석진 곳에서 밝고 훤한 곳으로 나오라
어둡고 구석진 곳에서 밝고 훤한 곳으로 나오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08.13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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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산스님/금인산 여래암 주지

우리는 빈손으로 태어나 너무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살아간다. 소유보다 중요한 것은 올바른 마음가짐과 끈질긴 노력이다. 무쇠도 갈면 바늘이 되듯, 꾸준한 노력 앞에는 어떤 어려운 일도 무릎을 꿇는다. 불리한 여건이라도 언행을 곱게 하면 편안한 삶이 펼쳐지고 아무리 좋은 여건이라도 곱지 못한 언행을 일삼으면 결국 험난한 삶이 전개된다.

우리는 코로하늘의 공기(空氣)를 들이마시고 입으로는 땅에서 생산된 것들을 먹고살아간다. 하늘에는 네 하늘, 내 하늘이 없다. 땅도 내발로 못 밟을 땅이 없다. 모두 하나이며 공동의 소유다. 서로양보하며 상생의 길을 가도록하자. 내 것을 내려놓는 양보와 희생 속에 상생이 들어있다. 서로 자기이익만 챙기다보면 반목과 갈등으로 사회구성원 간에 신뢰가 무너진다. 상대의 특성과 강점을 밀어주는 지혜와 현명함이 절실히 요구된다. 너와 나를 분별하면 중생, 하나가되면 부처다. 움켜쥐면 중생, 펼쳐놓으면 부처가 된다. 부처님께서 내리신 세 가지진리가 있다. 첫째,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둘째, 죽을 때는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

셋째, 복을 지으라. 우리는 머지않아 죽을 인간들이다. 그리고 빈손으로 떠나갈 사람들이다. 빈손으로 떠나가되 그동안자신이 지은 복(福)과 업(業)만은 반드시 가져가게 된다. 복 짓는 것은 내가가진 것들을 남들과 나누는 것이다. 수행자는 나눔을 으뜸으로 삼기에 모든 언행을 올곧게 하고 부귀권력, 명예를 탐하지 않는다. ‘서경(書經)에는 “성인도 망념을 가지면 광인이 되고, 광인도 망념을 이기면 성인이 된다(惟聖罔念作狂, 惟狂克念作聖)”하였다. 나눔에는 재물보시와 법(法)보시, 무애보시가 있다. 그중에서도 법보시가 최고의 보시이다.

불교에서 자꾸 비우고 버리고 나누어주라는 것은 모든 소유물을 다 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둡고 구석진 곳에서 밝고 훤한 곳으로 나와 폭넓고 대범하게 적극적로 살아가되 재물, 지위, 명예 이런 것에 집착하지 말고 가볍게 살아가라는 것이다. 부족하고 불편한 것을 참고, 요놈의 집구석 하지 말라. 상대도 내 집에 오면 불편함을 참아야할 테니까. 만사를 태평한 마음으로 서로 손잡고 위로격려 속에 칭찬의 말을 건네며 대립과 다툼을 하지 말라. 서로의 장점만 찾고 적극적인 자세로 신나게 살아가자. 너무 많이 가져무거운 짐, 과감하게 벗어던지고 가볍게 살아가자. 텅 빈 마음으로 내가 가진 모든 것과 재능을 이웃과 상대와 나누는 기쁨 속에 살아가도록 하자. 그러면 무량한 지혜, 광명, 복덕이 내려지게 되어 서서히 밝은 앞날이 전개된다. 이타적인 관심과 배려로 내가 좀 불편하고 힘들어도 그늘진 곳에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보살피고 행복하게 해주는 봉사정신으로 살아가자. 그러면서도 ‘주는 마음 없이 주고, 나는 베푸는 사람’이란 마음 없이 행하도록하자.

이것이 하심(下心)이다. 하심은 나를 낮추는 것이다. 나를 낮추고 살면 남들과 부딪치지 않기 때문에 만복이 굴러온다. 나와 너를 분별하는 마음이나 집착 없는 공생관계 속에서 조화롭게 살아가자. 우리는 모든 생명과 더불어 살아가야한다. 파리, 모기, 벌레 한 마리 죽이는 것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 말자. 죽는 입장에서는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없다.

그러므로 크던 작던 간에 원한을 맺지 말라. 하찮은 벌레나 물고기라 하여 자신을 죽이는데 원한을 품지 않는 것은 없다. 죽인 쪽은 금방 잊어먹을지 모르지만 죽임을 당한 쪽은 반드시원한을 품게 된다. 원한을 맺어두면 어느 순간 비참한 과보를 받게 된다. 하물며 사람과 사람사이라면 아무리 어려워도 남을 속이거나 피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

최후의 순간까지 건전한 인간성 형성과 종교적 철학적 윤리적 성향을 키워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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