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리즘의 아포리아
내셔널리즘의 아포리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08.15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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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진/수필문우회 회장

 
요즘 주변국들의 내셔널리즘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화되어 간다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 20세기는 큰 흐름으로 보아서 세계화가 진전되어 왔다. 이러한 세계화의 흐름은 골치 아픈 경제사회적 문제를 각국에 야기하고 있지만, 이렇다 할 유력한 대안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프랑스 혁명으로 시작된 프랑스 내셔널리즘을 나폴레옹이라는 영웅이 온 유럽에 수출한 이래, 유럽은 18세기 말에서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전화(戰禍)로 시달렸다. 양차에 걸친 세계대전을 치르고 나서 20세기 후반 반세기에 가까운 동서냉전 기간을 거치면서도 다행히 전쟁은 회피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교착 상태에 빠져 1917년부터 염전 분위기가 팽배한 프랑스에서 전쟁내각 수상으로 전쟁을 끝까지 수행해 승리했던 클래망소는 1929년 사망할 때 자기가 죽으면 독일 방향으로 눈 뜬 채로 세워서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으며 또 그렇게 매장되었다.

이런 결과나 초래하는 내셔널리즘이 다시 사람들을 전쟁으로 몰아갈 것인지 묻고 싶은 기분이 든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1 시조혁거세거서간(始祖赫居世居西干)을 보면 왕이 즉위한 후 3번째 기록인 8년 왜인들이 변경을 침범하려 했다는 기사가 보인다. 우리 조상은 그때부터 이웃의 침략을 받았다.
내셔널리즘의 어원인 ‘natio’는 고대로마세계의 중심세력과 혈연으로 연결된 주변의 공동체들을 지칭하는 것이고, 중세에 와서는 교회공동체의 여러 파를 의미했다.

영국 사회인류학자 겔너는 내셔널리즘을 정치적 단위와 문화적 단위를 일치시키려고 하는 정치적인 운동으로서 정의하고, 내셔널리즘은 근대적 산업화에 수반되는 사회의 유동화와 평등화를 배경으로 한다고 보았다.

내셔널리즘은 이데올로기로서나 제도로서나 그 완성상태에 도달할 수 없는 아포리아를 내포하고 있다. 왜냐하면 내셔널리즘은 사회적인 평등관념과 내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에, 계급과 성별을 둘러싼 대립에 의하여 언제나 모순에 빠지게 마련이고 따라서 그 완성은 계속 미루어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와 우리 후손이 살아가야 할 21세기 세계에서 내셔널리즘이 미래의 행복한 삶을 위하여 잘 기능하리라고는 믿을 수 없다. 더구나 우리 같이 국토에 부존자원이 거의 없는 나라는 더 이상 생각해 볼 여지조차 없다. 세계를 향해 문을 열고 나가야 된다. 우리가 어려웠던 시절 경험을 세계와 공유하며 상생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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