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이 난무하는 대화
욕이 난무하는 대화
  • 이선효
  • 승인 2011.05.30 09: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선효/편집국장
“X발, 존나 짱나네. X만한 새X 지X하고 있네” “야! 씨X 이리 와! 병XX. 이 X새끼 들은 척도 안하네 뒤질라고. X만한 게” 필자가 사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초등학생들의 말이다. 대부분의 대화에 욕설이 난무한다. 당황스러운 장면이지만 이 말을 들은 상대 아이는 아무렇지 않은가 보다. 덤덤하다. 어떤 때는 되받아 하는 말도 그런 식이다. 초등학생 뿐만 아니다. 유치원 아이들까지도 예사로 욕을 하며 논다. 놀이터 옆에 주차장이 있는 탓에 자주 목격하는 장면이다.


친구한테 욕을 하면 되느냐고 나무라면 아는 안면 탓인지 무안해 하는 기색조차 없다. 욕이란 의식도 없이 사용한 욕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모양이다. 다들 이렇게 말해요 라고 대답한다. 5, 6학년쯤으로 보이는 한 학생은 팔을 치켜들며 쎄 보여 그런 말을 한단다. 또 새로운 욕을 하면 애들이 신기한 듯 따라 하는 것도 재미있단다. 씨X, 존나 가 욕이예요 라고 되묻기도 한다. 한 녀석은 욕을 섞어 쓰지 않으면 말에 재미가 없단다. 욕이 욕이라는 생각이 없고 욕이 욕처럼 들리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중.고등학생으로 갈수록 대화에 욕을 사용하는 빈도가 높다. 청소년의 70% 이상이 매일 욕설을 사용한다는 올해 초 여성가족부의 조사가 아니더라도 쉽게 목격한다. 길거리에서, 패스트푸드점에서 그들이 하는 대화를 들고 있자면 낯이 뜨겁다. 아들과 함께 할라치면 더욱 난감하다. 시내버스에서 이런 경우를 당하면 주위에 있는 어른들의 표정을 살핀다. 괜히 필자가 무엇을 잘못한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린다. 대화에 절반이 욕이다. 그들이 하는 욕을 차마 글로 표현할 수가 없다. 모두가 동감할 것이다.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입대를 앞둔 필자의 아들에게 너도 그러냐고 물어본다. 질문의 의도를 파악해선지 절대 아니라고 한다. 내가 보는 앞에서의 말투를 보면 그러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내 아이가 그러지 않을 거라 솔직히 장담할 수 없다. (아들아 미안하다. 아빠가 너를 의심해서) 아이들이 대문 밖에서 친구들과의 대화에 욕을 섞는 것은 이미 생활화되어 있는 듯하다. 필자의 아들의 말을 빌리면 아이들이 사용하는 욕설이 점점 더 원색적이고 거칠어 간다.


아이들에게 욕을 어디서 배웠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학교에서, 친구들에게서 배웠다고 대답한다. 더러는 영화에서, 인터넷에서라고 말한다. 중학교 교사인 필자의 친구도 심각한 상황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어찌할 수 없단다. 심하다 싶은 경우 주의를 주지만 그만이란다. 만성이 돼서인지 그냥 지나칠 때가 많다고 한다. 그는 동시에 교사들의 언어사용에도 책임이 크다고 지적한다. 폭력적인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교사들이 많다고 한다. 수업 중에도 욕을 섞는 교사까지 있고, 심지어 학생들이 즐긴단다.


유치원 아이들부터 청소년들까지 나쁜 언어습관이 심각한 수준에 빠져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원인은 간단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 전반에 퍼진 막발에서 기인한다. 대통령에서부터 국회의원, 고위공직자들의 여과없이 드러나는 막말과 욕설이 정당해 보이고 또 그것을 쉽게 용인한데서 비롯됐다. 최고 수준에서 허용되니 그 다음, 또 다음 단계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 되어 버린 것이다. 당장의 카타르시스를 위한 기성세대의 상스러운 말이 우리 아이들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