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論語) 이야기
논어(論語) 이야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10.0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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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진/수필문우회 회장

《논어》는 공자를 중심으로 한 언행록이다. 공자의 말씀, 공자가 자기 제자 또는 그때의 사람들과 나눈 문답, 제자들이 본 공자의 기거동작(起居動作)에 관한 구체적인 기술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논어》의 원문은 판본(板本)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총 자수가 약 1만6000자로, 두 번 이상 사용된 글자가 많기 때문에 실제로 사용된 서로 다른 글자는 약 1400자에 불과하다. 이와 같이 사람들이 비교적 익히기 쉬운 범위 내의 글자들로 기술된 《논어》는 약 2500년 동안 주로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양의 많은 사람들이 애독해 왔고, 또 전문을 암송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 긴 역사 속에서 한때 진시황의 분서, 모택동의 문화혁명으로 수난을 겪기도 했지만 공자는 성인으로,
《논어》는 성전(聖典)으로 숭상을 받은 기간도 아주 길었다. 그러나 《논어》에는 성서나 불경 같은 종교 서적과는 달리 어떤 초월적인 존재나 피안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세상의 양식(良識)을 존중하며 끊임없이 자기 수양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공자와 그 제자들의 인간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 《논어》를 딱딱한 유교의 경전 정도로만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도 한번도 그 책을 직접 잡고 읽어 볼 기회가 없었던 사람일 것이다.

필자의 세대도 《논어》를 접한 것은 옛 사람들에 비하면 아주 늦었다. 철이 들 무렵 한글 전용의 조류에 휩쓸려 한문과 별로 친숙할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아이들이 취학 전에 어른들의 강권으로

《천자문》은 읽었고, 조금 별난 지체나 관습을 지닌 집안 아이들은 초등학교 저학년에 《동몽선습(童蒙先習)》, 중,고등학생 때는 《명심보감(明心寶鑑)》 정도는 읽어야 했다. 그러고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언젠가는 한번쯤 꼭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으로 대개가 《논어》를 읽었다. 필자도 그러한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번역과 해설이 곁든 책을 택해서 건성으로 읽었다. 그래서 그랬던지 어디선가 읽었던 낯익은 구절을 만나면 반가웠던 것을 빼놓고는 별 감동을 받지 못했다.

그 《논어》를 다시 읽은 것은 대학을 졸업한 해였다. 유교 사상과 관계된 ‘한국 대학생의 가치관 조사연구’라는 프로젝트의 조수 역을 맡았기 때문이다. 우선 조사의 질문지 문항(問項)을 만드는 기초 작업으로 《사서(四書)》와 《소학(小學)》에서 학생들의 도덕적인 견해를 묻는데 적당한 어구를 찾아 인덱스카드를 만드는 일을 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원문을 한 구절 한 구절 정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만 해도 아직 우리에게 《논어》를 읽어야 할 기회가 잦았던 셈이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유학계획을 접어 버리고 취직을 했다. 바쁜 일과에 쫓기다 보니 《논어》 같은 것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20, 30대를 다 보냈다. 마흔 살이 되던 해에 마침 맡아 있던 합자회사 일로 《TIME》지 아세아판 책임자였던 한 일본인을 만났다. 7년이나 연장자였던 그는 체구가 작은 편이었지만 말수도 적고 몸가짐도 묵직한 문자 그대로 군자였다. 그때부터 20년 가까이 서로 오가며 만나는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자주 대하다 보니 그가 어릴 때 《논어》를 읽었고 그것을 나이가 들어서도 암송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사람 인품에 끌리게 된 나는 그와 친숙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욕심에서 《논어》를 다시 일본어로 읽고 관심을 갖고 있던 많은 구절은 외웠다. 그러한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논어》에 아주 반해버렸다.

다른 글도 그렇겠지만 《논어》는 눈으로 읽기만 하는 것보다는 외우면 훨씬 감동적이고 문장도 시(詩)처럼 아름답게 느껴진다. 오래 읽다 보면 일상 생활 속에서 뜻밖에도 자주 《논어》 속의 구절들을 만나거나, 불현듯 상기하게 되는 경우가 잦게 된다. 그때는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기쁜 감정이 가슴 속에서 피어 오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쁨을 함께 토로할 사람을 주변에서 만나는 일이 점점 어렵게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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