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4중주
마지막 4중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10.13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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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진/수필문우회 회장

지난 연휴에 〈마지막 4중주〉라는 영화를 보았다. 오래간만에 온몸이 조여오는 듯한 짙은 감명을 맛보았다. 무엇보다 전편을 흐르고 있는 베토벤의 《현악4중주 제14번 작품 131》의 절절한 가락들이 아직도 마음속 깊이 울리고 있다.


영화는 한 현악4중주단의 팀 결성 25년째가 되는 해 첫 리허설 모임에서 시작된다. 첼리스트는 갑자기 자기자신의 손가락이 평소와는 달리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리허설을 중단하고 병원을 찾아간 그는 파킨스 병 초기라는 진단을 받는다. 제1바이올리니스트의 대학 은사인 그는 제자의 청을 받아들여 현악4중주단을 결성하고, 주도적으로 이끌어 왔는데 갑작스러운 발병으로 그가 은퇴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는 선언을 하자 잔여 멤버들은 커다란 충격에 휩싸인다. 팀이 새로운 멤버를 영입하게 되면 각자가 맡아온 역할도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그들은 오랫동안 각자가 가슴속에 두고 억제해왔던 여러 가지 갈등과 욕구들을 한꺼번에 쏟아내 서로가 격렬하게 충돌하고 만다. 자칫하면 팀이 공중 분해될 지경까지 몰렸지만 각 멤버들은 결국 팀을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다시 뭉쳐서 그 위기를 극복하고 스승의 고별공연을 성공적으로 치른다. 이러한 이야기를 1악장에서 7악장까지 한번의 휴지(休止)도 없이 연속해서 연주하도록 되어 있는 《베토벤 현악4중주 제14번》을 바탕으로 깔고 무겁고 우울하게 펼쳐 보인다.

현악4중주단 멤버들의 역할을 맡은 네 배우들은 아카데미 수상자가 포함될 정도로 연기력이 뛰어난 실력파들로 구성되어 있어 영화 관객들이 그들의 이야기에 깊이 몰입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더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은 스크린 뒤에 숨어서 연기자들이 시늉만 하는 악기 소리나 음악들을 실제로 연주하고, 사운드트랙까지 담당한 '브렌티노 현악4중주단'의 뛰어난 음악적인 재능이다. 요즘 영화가 예전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도록 음향효과가 좋아졌다는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그들이 연주한 《제14번》 제1장의 서두나 제7악장은 지금까지 필자가 들어온 그 어떤 현악4중주단의 소리보다 더 감동적이었다. 제7악장의 연주가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다 끝나도록 이어져 대부분의 관객들이 자기 좌석에서 일어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실내악의 최고봉인 베토벤의 현악4중주는 그동안 많은 현악4중주단이 연주해왔다. SP 시절부터 많은 명반을 남긴 '부다페스트 현악4중주단'은 1917년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헝가리인만으로 구성되었다. 1932년 창립멤버가 다 떠나고 독일에서 공부한 러시아인들로 교체되었다. 1938년에는 그들이 미국으로 본거지를 옮겼다. 그때부터 그들은 공연을 할 때마다 천 명 이상의 청중들이 몰려들고, 취입한 음반들이 대량 판매되는 현악4중주의 황금시대를 맞게 되었지만 1967년 팀 창설 50주년 공개연주를 마치고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그들 이후 베토벤의 현악4중주를 가장 잘 연주한 것으로 평가받은 악단은 1970년 오스트리아에서 결성된 '알반 베르크 4중주단'이었다. 아주 정교하고 섬세한 앙상블을 들려주어 1982년 CD가 등장하자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매수의 음반을 파는 현악4중주단이 되었다. 2005년 2대째 비올리스트가 사망하자 팀 해체의 위기를 맞았지만 처음으로 여성 멤버를 영입해 고비를 넘기는가 했는데, 여의치 않았던지 2008년 세계일주 고별투어를 끝으로 해산되고 말았다.

브렌타노 현악4중주단은 1992년 창립되어 우리나라에는 아직 별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프린스턴 대학 최초의 전속악단이고 멤버 네 사람이 모두 다 그 대학에서 실내악 강의를 맡고 있다. 그들 역시 연주활동을 베토벤의 후기 현악4중주에 집중하고 있는데 그 멤버 중의 하나인 첼리스트 니나 리(NINA LEE)는 실명으로 영화 〈마지막 4중주〉의 주인공 첼리스트의 뒤를 잇는 후계멤버로 출연했다. 그녀가 우리교포라는 정보가 나와 있으나 브렌타노 홈페이지에서나 다른 공식사이트에서는 아직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앞으로 브렌타노 현악4중주단에 의해서 베토벤의 현악4중주 전 곡들이 모두 연주되어 각종 매체로 배포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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