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대(三代)가 한 집에 사는 사람들 - 上
삼대(三代)가 한 집에 사는 사람들 - 上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11.19 14: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정걸/울산 새부산 콘크리트 회장·한국문인협회 회원

 
우리나 산골마을이나 농어촌에서는 아이 우는 소리가 멎은 지 오래라고 한다. 이로 인하여 70년 이상 전통의 초등학교도 폐교가 되는 실정이니 천지개벽 같은 변화이다. 젊은이가 모두 떠난 농어촌에는 어린 아이들이 없으니 학교에도 학생이 없다. 문전옥답도 놀이터처럼 가꾸던 텃밭도 묵지가 될까 두렵다.

언제나 꼬리치며 반기는 집개는 재롱까지 부리니 유일한 안식이 된다. 아이들이 다 자라 모두 직장 따라 집 떠나가니 사람 훈기가 없는 집은 어쩌다가 아내가 출타하면 더욱 외롭고 쓸쓸하다. 어린아이처럼 사람 기다리는 일상은 늦가을 낙엽처럼 역할이 끝난 현실이 더 없이 애처롭다. 원망도 하소연도 할 곳이 없다. 외로움이 가장 힘든 형벌 인 것을 누가 아랴 계절의 감각도 추억을 더듬어 더욱 슬프고 밝은 달을 보아도 어린 시절이 그립다. 잊혀진 지난 세월이 발효된 세상살이 맛이 아쉬움만 토해낸다. 몸져누운 어머니 옆에 누워 손을 꼭 잡고 옛날이야기 할 때 서로 고마워하며 어머님의 속 깊은 당부는 손자 뒷바라지 잘하라는 것이다. 눈에 멀어진 아이들이 보고 싶은 모양이다.

마음의 영양부족은 세월 탓이긴 해도 관심과 시간의 여유부족이지만 어른보다 더 바쁜 아이들의 교육 과열은 피할 수 없는 생존 경쟁이다. 뛰어놀고 체험 놀이도 할 수 없이 학원에 보내는 사교육의 끝이 더 두려운 세상이다. 외지의 아들딸이 늘상하는 수인사는 마음의 울타리 일 뿐이다. 제사음식도 대행업체 주문하는 판에 살아 있는 부모님 생신인들 다르겠는가. 도시의 뷔페에서 시간을 정해 모여 먹으니 음식 한 가지도 정성스럽게 평소 즐기는 음식이 있을 수는 없다. 따라서 예약한 장소는 시간에 쫓긴다. 생일을 당기고 늦추고 휴일을 택하여 내리사랑의 꽃인 손녀 손자들은 핑계 같은 아이들 소식뿐이니 음식 맛이 제대로 나겠는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자연스럽게 식사하고 이야기 할 수 있는 한 지붕 가족이 왜 불가능 한지 세상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 시간에 쫒기고 바쁘게들 사는지 모두들 버스정류소의 이방인들 같다. 더 늙어 치매라도 들고 하면 며느리 밥 먹기는 어려울 듯 보이니 미래가 더 없이 두렵다. 마른가지 위로 윙윙 부는 찬바람 같은데 낙엽 무덤이 자꾸 눈에 보인다. 고동껍데기 같은 인생살이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손에 거머쥔 것만 관심이 있는 것 같아 아이들 싸움 붙이지 말고 잘 정리해야 할 것인데 아픈 손가락이 더 걱정이다.

경제적인 부담만 없다면 건강한 부모님이야 누가 모시지 않을까 마는 늙어 병들고 노병에 고생하니 그 수발이 어려워 노인 병동으로 가야 할 것인가? 병원으로 간 날이 집 떠난 날이요, 대문 밖이 저승 아닌가. 어느 노부부가 아내의 침해를 견디다 못해 동반살인극이 된 안타까운 사연은 우리의 사회적 책임이 뒤 따르는 일이다. 가정사 일은 평소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습관화 되는 것이며 내가 효행스럽게 가족화 생활을 해 왔다면 가치관이 정립되어 아이들도 몸에 익숙해 질 것이다. 아이들의 생일은 태어난 아이의 축복도 되지만 실로 부모님도 크게 축하를 받는 일이다. 아이가 어른이 되고 나이 40이 넘어가면 길러주고 뒷바라지 해준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 생일 전 날 부모님을 집으로 모셔오고 아침에 부모님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잘 차려 드리고 가효음식을 나눈 뒤 감사의 여행을 가 온천욕을 시켜드리고 체온으로 느낄 수 있는 행효를 한다면 정말 효자 일 것이요, 효부일 것이다.

부모님이 고마워 할 뿐 아니라 부모 자식 간에 꽃피는 인간애와 혈육애는 이 세상에 더 없는 자기 행복일 것이다. 세월이 흘러 부모님 연세가 높아지면 차량여행도 힘겨워지면 부득이 가까운 곳에서 목욕을 시켜드려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